카불 등 대도시 중심으로 지시 불복…국제사회도 우려 표명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의 부르카 착용이 의무화되자 공포 통치 본격화에 대한 두려움 속에 일부에서는 여성의 반발 기류도 감지된다.
9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이 지난 7일 최고 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의 이름으로 여성의 공공장소 차도리 착용 의무화를 발표하자 현지 여성과 국제사회의 우려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AFP통신은 차도리는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가리는 부르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부르카는 눈 부위만 망사로 뚫린 채 얼굴 등 온몸을 가리는 이슬람 복장을 말한다.
여성 운동가 타흐미나 타함은 탈레반의 발표와 관련해 AFP통신에 "나는 수감되고 있다"며 "인간임에도 자유가 박탈됐다"고 주장했다.
아쿤드자다는 포고령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매우 연로하거나 어리지 않은 여성은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려야 한다"며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아버지나 가까운 남자 친척들은 투옥되거나 정부에서 해고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서부 대도시 헤라트에서 조산사로 일하는 아지타 하비비는 "여성의 손과 얼굴이 가려져야 한다는 말이 어디에 씌어있느냐"고 강하게 반문했다.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했던 라일라 사하르는 전신을 가리는 옷을 입기로 결정했지만 이는 남자 가족이 처벌받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탈레반의 지시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헤라트 주민 파티마 레자이는 많은 여성이 탈레반의 명령에 저항하고 있으며 강제로 도입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헤라트와 수도 카불 등 대도시에서는 탈레반의 포고령 발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여성은 거리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탈레반의 조치에 대해 국제사회도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탈레반의 이번 발표가 걱정스럽다며 "탈레반은 아프간 여성에 대한 약속과 국제인권법 준수 의무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미국 국무부도 "아프간 여성이 지난 20년간 획득하고 누려온 권리가 약화하고 있는 점이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앞서 탈레반은 1차 집권기(1996∼2001년) 때 샤리아를 앞세워 공포 통치를 펼쳤다.
당시 탈레반은 음악, TV 등 오락을 금지했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했다. 여성은 부르카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으며 권선징악부는 '도덕 경찰'로 이슬람 질서 구축에 힘썼다.
탈레반은 지난해 8월 재집권 후 여성 인권 존중 등 유화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다시 과거 같은 이슬람 질서 강화에 힘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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