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나치 침공 물리친 2차 대전 '승전국'에서 침략자로 전락

입력 2022-05-09 18:42  

러, 나치 침공 물리친 2차 대전 '승전국'에서 침략자로 전락
"러시아에 가장 중요한 애국 행사가 전쟁 정당화로 변질"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러시아에서 5월 9일은 매우 의미 있는 날로 손꼽힌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미국, 영국 등 서방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해 독일 나치 정권의 유럽 침략을 물리치며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날로 '전승절'로 기념해 대규모 군 열병식으로 승리를 자축하고, 당시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2천700만명의 희생자를 기린다.
AP통신은 "전승절은 소련 붕괴 뒤 분열상을 빚은 러시아에서 정파를 가리지 않고 숭상받는 보기 드문 행사"라며 "크렘린궁은 세계열강으로서 러시아의 역할을 부각하고 애국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이를 이용해왔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종전 77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전승절엔 러시아의 위상이 정반대가 됐다.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이날 러시아는 더는 승전국이 아닌 침략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애국 행사'인 전승절 열병식이 예년과 달라졌다고 해석했다.
AP통신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면서 올해엔 러시아인들이 열병식에 우민화되지 않을 것 같다"라며 "일부 러시아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면전을 선포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 체제에서 전승절의 성격이 변질했다고 지적했다.
이날이 세계대전의 승리와 종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현대적 군사력을 자축하는 날로 변했다는 것이다.
NYT는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에서 전승절의 의미가 더욱 변색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독일 나치의 계승자로 깎아내림으로써 전쟁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려 한다고 평론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려와 달리 전면전을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중인 러시아군을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싸운 소련의 붉은 군대와 비유했다.
그러면서 마치 나치가 소련을 공격한 것처럼 서방이 러시아를 침략하려 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특별 군사작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정당성을 설파했다.
러시아 언론인 막심 트루돌뤼보프는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실제 전쟁에 대한 정당성으로 바꿔 놨다"라며 "승리의 숭배에서 전쟁 숭배로 미묘하게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또 푸틴 정부가 러시아 사회를 점차 군국화하기 위해 전승절을 사용했으며 "정치적 구호를 넘어 상상적인 재연을 물리적 탱크와 총, 군대를 가진 실제 공격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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