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곡창지대' 파종·수확 타격…국제 곡물가 강세 지속 전망
수입단가에 3~7개월 시차 두고 반영…국내 소비자물가 계속 압박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세계 3대 곡창지대의 하나로,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세계적인 식량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에 있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식량난 가중으로 굶주림 걱정이 커지고 있다. 곡물 수입국인 우리나라에서는 먹거리 가격이 갈수록 뛰면서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현지 농업이 단기간에 정상화되기는 어려워 국제 곡물 시장에 전쟁의 여진이 몇 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러 군홧발에 짓밟힌 우크라 곡창지대…파종도 수확도 타격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위성 사진과 지리 데이터 분석업체인 케이로스는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이 작년보다 최소 35%(1천200만t)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달 5일 밝혔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으면 올해 예상 생산량은 2천100만t이다. 이는 4월 14~22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관측위성 모디스(MODIS)가 찍은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5위의 밀 수출국이다. 옥수수 등 다른 곡물의 주요 공급국이기도 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3월 25일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겨울 곡물(밀 등)과 옥수수, 해바라기씨의 생산 면적 가운데 20~30%는 수확이나 봄 파종을 못 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쟁과 이로 인한 비료·농약·연료 부족 탓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해 9~10월 700만㏊에 겨울밀을 심었다. 수확 예정 시기는 올해 7~8월이다. 겨울작물은 우크라이나 곡물 파종 지역의 거의 50%, 연간 곡물 수확량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런데 올해 수확해야 하는 겨울밀의 49%가 러시아군에 점령됐거나 전쟁 영향을 받는 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돼 수확 타격이 불가피하다.
해바라기는 통상 4월에 심어 9~10월 수확하는데 올해 파종 면적이 작년보다 35% 감소할 수 있다는 게 FAO의 추산이다.
지금까지는 지난해 수확한 곡물의 수출이 전쟁으로 막혔지만 올해는 파종과 수확부터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학의 올레그 니비에프스키 교수는 "(러시아군에 점령된) 경작 지역이 내달 해방된다고 해도 생산 사이클(파종에서 수확)을 재개하는데 아마도 2~3년 걸릴 것"이라고 미 CNN 방송에 말했다.
◇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끝나도 상당기간 밥상·외식 물가 압박
우크라이나 사태는 올해 하반기는 물론 내년에도 국제 곡물 수급의 불안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와 도로, 곡물 저장소 등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기반시설이 일부 파괴되고 러시아군이 농기계까지 훔쳐 가면서 전쟁이 끝나도 농업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금지, 헝가리의 곡물 수출 중단 등 식량 보호주의 확산도 부정적 요인이다.
FAO가 조사한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 100 기준)는 4월 158.5포인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전달보다 0.8% 하락했지만 작년 같은 달보다는 29.8%나 높은 수준을 보였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지난달 28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3월 밀 선물가격(미 시카고상품거래소 기준)은 t당 407달러로 1년 사이에 73.9% 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옥수수는 t당 293.9달러로 36.6%, 대두(콩)는 614.8달러로 18.4% 오르며 모두 역대 최고치를 넘보고 있다.
3월 우리나라의 밀과 옥수수, 대두 수입단가는 평년(2015~2019년)보다 43.0~59.3%, 1년 전보다는 21.2~47.2% 상승했다.
한국은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으로, 전체 곡물 수요량의 80%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세계 곡물 가격 변동성에 매우 취약하다고 농협경제연구소는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수입 곡물을 원재료로 쓰는 가공식품, 외식 등의 3월 소비자물가가 2017~2019년보다 11.6~33.8%, 작년 같은 달보다 5.3~27.7% 오른 점을 들었다.
4월에 밀가루는 1년 전보다 16.2% 뛰고 서울에선 냉면 한 그릇 값이 1만원을 넘는 등 곡물 수입단가 상승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입물가 상승 압박도 커지고 있다.
특히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끌어올린 국제 곡물 가격은 대략 다음달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코로나19 사태와 국제 물류난, 기후 위기 등이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 곡물 가격은 수입곡물 가공업체의 선도 구매로 3~7개월의 시차를 두고 수입단가에 전이된다. 이후 배합사료, 외식, 가공식품 물가에 반영된다.
수입단가 10% 상승은 가공식품과 외식 소비자물가를 각각 3.40%, 0.58% 끌어올린다는 설명이다. 배합사료 생산자물가는 5.3%, 축산물 소비자물가는 1.72~2.94% 상승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종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 곡물 가격 상승분은 앞으로 국내에 본격 반영될 것"이라며 "얼마나, 언제까지 영향을 줄지는 기후 위기와 공급망 문제 등 다른 요인도 있어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대응 수단은 제한적이지만 단기적으로 대체 원산지를 개발하고 물가 영향 최소화를 위해 관련 업계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중장기적 방안으로는 곡물 비축량 확대, 장기 계약 등 공급망 안정화, 해외 농업개발 지원 강화 등을 제시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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