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시절 향수 가진 주민 적잖아…"러군에 정보 제공" 의심의 눈길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주민들이 친(親)러·반(反)러파로 갈라져 반목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뜩이나 이 지역은 러시아에 뿌리를 둔 친러 성향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들이 섞여 살며 불편한 관계였는데, 전쟁으로 인해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BBC는 돈바스 지역 중에서도 최전선인 바흐무트시에서 이같은 주민들의 기류를 전했다.
이곳 주민들은 대체로 삶의 터전에 쳐들어온 러시아에 반감을 보이지만, 친러 정서를 가진 이들의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린다.
시의회 직원들과 함께 서 있던 한 남성은 BBC에 우크라이나 당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곳은 러시아의 영토"라며 "이곳의 점령군은 우크라이나"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65세 여성은 "러시아를 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소련에서 우리는 다 같이 살았다"고 거들었다.
이 여성은 "(러시아가 바흐무트시를 점령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서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난 8년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 반군이 영향력을 행사한 돈바스에선 특히 구세대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강한 향수가 있다고 BBC는 전했다.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한 은퇴한 엔지니어는 "푸틴은 영리한 사람, 영리한 KGB 요원"이라고 말했다. 올해 80세인 그는 러시아가 이 지역을 점령한다 해도 자신에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이러한 친러시아 성향 주민들의 발언에 대해선 현실을 모르는 노인들의 무해한 불평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들의 의견이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점령에서 벗어난 우크라이나 내 다른 지역에서 친러 성향 주민들이 러시아군을 적극 지원했을 수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바흐무트 같은 최전방 도시에서 친러 정서가 지방 행정부까지 퍼진다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친러 성향 주민들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주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역 사업가인 드미트로 코노네츠는 시장 등 지방당국 관계자들을 가리켜 "그들은 분명 (러시아의 점령을) 막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시늉만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부시장은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의 일부이며 우리 일은 이곳의 일상을 보호하고 우리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러시아군) 협력자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이를 근절하는 것은 보안국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당국의 조언에 따라 시민 다수가 이미 마을을 떠나 대피했지만,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군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남아있다.
식료품 등을 모아 지역 군인들과 외곽 노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는 스베틀라나 크라우첸코는 "아마도 여기 몇몇은 (러시아에) 항복하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분쟁이 끝나고 포격과 총격이 멈추면, 반역자들은 이 세계에서든 다음 세상에서든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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