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마르코스 '후보 자격' 재차 인정하자 대학생 등 400명 규탄 시위
좌파·인권단체들 "대법원 소송 및 반대 캠페인 전개"
(하노이=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 독재자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64) 전 상원 의원이 지난 9일(현지시간) 실시된 대선에서 차기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대학생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400명은 이날 수도 마닐라의 선거관리위원회 밖에서 집회를 열고 마스코스의 대통령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날 오전 마르코스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자 시민단체들이 그의 후보 출마 자격을 박탈해달라며 제기한 청원을 재차 기각했다.
앞서 필리핀의 여러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마르코스의 대선 출마를 금지해달라며 총 6건의 청원을 선관위에 잇따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그가 공직을 맡았던 1982∼1985년에 소득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탈세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전력을 이유로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청원을 냈다.
그러나 결국 선관위가 6건의 청원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모두 기각 결정을 내리자 해당 단체들은 선관위 결정에 불복하면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좌파 성향 단체인 아크바얀 소속의 한 활동가는 "이번 선관위의 결정은 거대하고 제도적인 결함이 있다"고 비난하면서 "대법원에 소송을 내겠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카라파탄은 대선 불복 운동을 전개할 의사를 내비쳤다.
이 단체는 성명을 내고 "마르코스의 당선은 거짓말을 통해 독재자 가문의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미화했기에 가능한 것"이라면서 "시민들은 새로운 정권을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에서 마르코스에 패한 레니 로브레도(57) 부통령도 "과거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싸움은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는 독재자인 고(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로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장기집권했다.
특히 정권을 잡은 뒤 7년이 지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명의 반대파를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하면서 독재자로서 악명을 떨쳤다.
이에 시민들이 1986년 '피플 파워'를 일으켜 항거하자 하야한 뒤 하와이로 망명해 3년후 사망했다.
마르코스는 대선 출마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과거 선친의 독재 행적을 미화하는 전략에 치중하면서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갔고 결국 이번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독재자인 선친이 장기 집권하면서 자행한 수많은 정적 처형과 인권 탄압 등의 어두운 과거 때문에 집권 후에도 반대세력을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bum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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