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경찰, 장례 집회에 섬광탄도 쏴…백악관 "매우 충격적"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25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현장을 취재하다 11일 총격에 피살된 알자지라 기자의 장례식에 수천명이 모여 애도했다.
이스라엘 경찰이 시신 운구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면서 국제적 비난이 일고 있다.
13일(현지시간)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예루살렘에서는 중동 매체인 알자지라 방송의 시린 아부 아클레(51) 기자의 장례식이 진행됐다.
고인은 11일 새벽 요르단강 서안 제닌에서 이스라엘군이 테러범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벌인 작전 현장을 취재하다 총격을 받고 숨졌다.
동예루살렘 출신으로 25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을 취재해온 아부 아클레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운집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AP 통신은 2001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고위지도자 파이살 후세이니 이후 팔레스타인 장례식으로는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동예루살렘 지역 병원에 있던 아부 아클레의 시신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가톨릭교회를 거쳐 묘지에 매장됐다.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시신이 담긴 관이 병원을 나서자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팔레스타인"을 연호했다. 일부는 "시린, 당신을 위해 우리의 영혼과 피를 바치겠다"고 외쳤다.
이스라엘 경찰은 그 직후 진압봉을 휘두르며 현장에 진입해 팔레스타인 깃발을 찢고 섬광탄을 터뜨리며 해산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아부 아클레의 관을 들고 있던 남성 중 한 명이 놀라 균형을 잃으면서 자칫 관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고 AP는 전했다.
취재차 현장에 있었던 알자지라 특파원 기바라 부데이리는 이스라엘 경찰의 폭력은 아부 아클레를 두 번 죽이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후 이스라엘 경찰은 아부 아클레의 관이 실린 영구차를 호위하면서도 영구차에 부착된 팔레스타인 국기를 뜯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동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모두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 지역의 지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1967년 중동전쟁 당시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역을 자국의 영원한 수도로 선언했지만,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의 독립국 수도로 여긴다.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 당국은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주장하거나 지지하는 행위를 엄격히 단속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이스라엘 경찰은 병원에 운집한 주민들이 "국수주의적 선동"을 하며 이를 중단하라는 지시에 불응하고 돌멩이 등을 던졌다고 주장했다.
또, 성명을 통해 "군중이 영구차 운전자를 위협해 관을 넘겨받은 뒤 계획되지 않은 행진을 하려 했다"면서 "유가족의 뜻에 부합하는 계획된 방식으로 장례식이 이뤄지도록 개입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 경찰의 폭력적인 행태가 여러 외신을 통해 가감 없이 방송되면서 세계 각지에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해당 영상에 대해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숨을 잃은 뛰어난 언론인에 대한 기억을 기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어야 했다"며 "평화로운 행진이 돼야 했을 상황이 침범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이스라엘 경찰의 행동을 규탄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세세한 점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이건 조사가 이뤄져야 할 일이란 건 안다"고 답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보안군과 성요셉병원에 모인 팔레스타인인들 간의 대립, 그리고 일부 경찰이 현장에서 보인 행동에 깊은 근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측은 아부 아클레가 이스라엘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의 총탄에 맞은 것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군은 전문적 검사가 필요하다며 아부 아클레의 몸에 박힌 탄환을 자신들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지만, 팔레스타인은 독자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겠다면서 이번 사안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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