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해준건 많지만…전쟁이 문제해결 방식 아냐"
우크라 전쟁으로 경제 타격…주민들 이탈 증가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몰도바의 친러 분리주의 반군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제2의 돈바스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내부 주민들은 전쟁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 상당수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전했다.
이날 NYT가 방문한 '다시 소련으로'(Back in USSR)라는 이름의 식당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내부는 구소련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테리어로 도배돼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레닌 흉상이 세워져 있고 벽에는 소련을 상징하는 망치와 낫이 그려진 붉은 기가 걸려있었다.
식당 주인 이고르 마르티니우크는 "러시아는 우리한테 큰형 같은 존재였다"면서도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마르티니우크는 "여기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들과 사업을 보호하고 싶어한다"며 "(전쟁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자칭 트란스니스트리아 외무부 대변인인 폴 갈트세프는 "전쟁에 참여할 계획은 없다"면서 "공격 계획이 없고, 전술적 공격 준비도 안 했으며 러시아에 병력 증원 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린 작고 평화로운 나라"라며 "그 누구와도 특히 우크라이나와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남서부와 마주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2년 내전에서 러시아 도움을 받아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몰도바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주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병력 1천500명을 주둔시켰다.
트란스니스트리아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의 타격을 받은 상황이다.
원래 이 지역은 특수한 위치 덕에 러시아로부터는 가스를 싸게 공급받고 우크라이나로부터는 범죄 네트워크를 이용해 상품을 밀수하며 몰도바 세관을 통해서는 유럽에 상품을 수출한다.
전직 몰도바 정부 관리였던 알렉산드루 플렌체아는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경제 모델은 자유로운 러시아 가스와 밀수, 두 가지로 굴러간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쟁 여파로 우크라이나 항구가 폐쇄되면서 상품 흐름이 막혔고 관광객도 줄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주민들이 점점 이탈 중이고 특히 많은 젊은이가 유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계속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저렴하게 공급받고 있어 경제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인권단체는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더 억압적인 분위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칭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에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은 탄압을 받고 체포된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 리나는 "표현의 자유나 생각의 자유가 없다"며 "감옥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NYT는 최근 만나본 주민 대다수가 트란스니스트리아 정체성과 친러 성향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인다면서도 맹목적인 지지는 지양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민 에드워드 볼스키는 전쟁이 누구 탓인지 묻는 말에 "전쟁은 요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다"라며 "내가 거기 있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많다"고 부연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정치학자 아나톨리 디룬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이용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고 우크라이나도 그걸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측이 이 문제를 각기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려고 하고 우크라이나는 확전 분위기를 조성해 서방의 무기 지원을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미 국가정보국(DNI)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장기화하고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점령지를 확대하는 것이 목표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달 22일 러시아군 고위관계자는 러시아군의 다음 목표가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완전한 통제라면서 이를 통해 트란스니스트리아로의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 격인 티라스폴의 국가보안부 건물이 공격받았고, 다음날엔 라디오 방송탑 두 대가 폭파됐다. 당시 우크라이나를 공격 주체로 지목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부인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가 군사대응 명분을 만들기 위해 돈바스처럼 '위장 술책' 작전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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