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동맹국이지만 중립적 행보…외교·경제 실리 챙겨
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 거부권 손에 쥐어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이단아' 터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존재감을 한껏 뽐내며 지역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터키는 서방의 군사동맹인 나토 회원국이지만 친러시아 행보로 미국 등 서방과 갈등을 빚곤 한다.
터키는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경제·군사협력 관계를 확대했다.
터키는 최근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면서 러시아에 더욱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분쟁 당시 미국이 러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흑해에 전함을 투입하려 했을 때 터키는 러시아 편을 들며 진입을 막은 전력도 있다.
중동에선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미국이 주도한 국제동맹국의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미국이 지원했던 시리아 내 쿠르드족 무장조직을 섬멸하면서 시리아 내전을 피아 구분이 어려운 혼돈 속으로 몰고 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터키는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비난했지만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자국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수출하고 있으나 옛소련제 무기는 제공을 거부했다.
터키는 이런 '줄타기 행보'를 발판삼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터키는 3월10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최고위급 접촉인 외무장관 회담을 주선한 외교력을 과시했다.
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1일과 3월 17일에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을 주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여러 차례 평화협상이 열렸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이지만 터키는 중재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일부 나토 국가가 러시아를 약화하기 위해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러시아군의 점진적 철수를 위해서는 그에 상응해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터키는 우크라이나 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아울러 외교적,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
러시아 정치학자 이반 프레오브라젠스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우호적이었을 때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터키의 역할이 제한을 받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양국 모두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며 "옛소련권 국가에서 갈등이 확산할수록 터키의 영향력은 커진다"고 분석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우리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터키가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 중 하나가 돼 주기를 바란다"며 터키의 역할을 요청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영국·터키 등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는 우크라이나의 안보 불안으로 역내 외교적 위상뿐 아니라 경제적 이득도 챙겼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한 올해 1분기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터키의 무기 수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터키 수출업자협회가 지난 6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터키는 이 기간에 우크라이나에 5천980만 달러(약 733억 원)어치의 무기를 수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90만 달러)의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터키의 주요 방위산업 협력 국가로 터키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바이락타르 TB2' 무장 드론과 초계함을 주문했다. 2월 초 에르도안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 양국은 TB2 드론과 차세대 공격용 무인기 안카(ANKA) 등을 생산하는 시설을 우크라이나에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는 앞으로도 기존에 구매한 무기뿐 아니라 군용 통신 장비, 탄약 등 다양한 터키산 무기를 들여올 계획이다.
지난해 터키는 우크라이나에 45억 달러(약 5조7천700억 원)를 투자한 최대 투자국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2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와 우크라이나 간 연간 교역액을 100억 달러(약 12조8천억 원)로 늘리는 경제협력협정에 서명했다.
터키는 러시아산 에너지와 곡물을 수입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터키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터키는 러시아에 과일과 채소를 대량 수출하고 있으며 러시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지난해 러시아인 450만 명이 터키를 방문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대해 터키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나토 동맹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터키의 외교 전술로 볼 수 있다.
나토 조약에 따르면 신규 회원국 가입을 위해서는 기존 회원국 전체의 동의가 필요하다.
터키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터키의 분리 독립 세력인 쿠르드족에 포용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 '거부권'을 손에 쥐고 마음이 급한 나토를 압박하고 있다.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터키는 나토의 문호개방 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두 정부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양국에 분명한 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터키에 대한 방산물자 수출 금지를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터키에선 2023년 대선과 총선이 예정됐다.
터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압적 통치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터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터키 국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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