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민간인 대피 극장마저 폭격…러시아는 부인
CNN "부차 참상도 러시아 떠난 후에야 드러나"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의 상징이던 남동부 요충지 마리우폴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러시아군이 현장에 남겼을 수 있는 전쟁 범죄 증거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미 CNN 방송이 17일(현재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작전 참모부는 이날 새벽 성명을 통해 마리우폴에서 '작전 임무'를 끝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군이 지난달 21일 마리우폴을 점령했다고 선언한 지 27일 만이다.
마리우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러시아가 마리우폴 점령에 사력을 기울인 것은 마리우폴이 러시아가 앞서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를 육로로 연결하고 아조우해를 장악하는 데 핵심 도시이기 때문이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CNA의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만은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돈바스 지역을 점령했다고 선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CNN에 말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마리우폴 장악을 위해 무차별적 공격을 감행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러시아는 지난달 초 우크라이나 전쟁의 총사령탑으로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를 세우면서 민간 시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심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체첸에서 활동했고,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시리아에서 러시아군을 이끌었다. 러시아는 두 지역에서 인명피해는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민간인 지역을 무차별 폭격하며 파괴했다고 CNN은 전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오리시아 루트세비치 연구원은 "드보르니코프는 병원이나 학교 등 민간인 시설을 목표로 살아있는 모든 것을 포격한 뒤 남은 것은 점령하는 단순한 전략을 쓴다"며 "이미 우리가 마리우폴에서 목격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동을 폭격하고, 수백명의 주민이 대피했던 극장 건물을 포격하는 등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만들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수만명'이 마리우폴에서 숨졌다고 말했고, 마리우폴 주지사는 2만2천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확한 사망자 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마리우폴을 탈출한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잔혹 행위에 대한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 주민은 식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러시아군의 포탄이 날아와 눈앞에서 3명이 사망했다고 CNN에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이를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조작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리우폴 시의회는 러시아군이 이동식 화장(火葬) 시설을 이용해 시신을 없애고 '여과 캠프'로 불리는 수용시설에서 잔혹 행위 목격자들을 확인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이 시설은 1990년대 말 체첸 전쟁 당시 반군을 찾아내기 위해 러시아군 등이 운영한 시설로 '여과 수용소', '정화 캠프'로도 불렸다. 특히 민간인에 대한 구타·고문으로 악명높았다.
CNN은 부차나 이르핀, 보로디안카 등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의 참상이 러시아군이 떠난 뒤에야 확인됐다며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을 통제한다면 이곳에서 벌어진 비극이 역사에 남겨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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