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경제, 고유가 덕에 제재충격 감추지만 사실 골병"

입력 2022-05-19 16:25  

"러 경제, 고유가 덕에 제재충격 감추지만 사실 골병"
전문가 체질악화 지적…"원유금수가 결정타 될 듯"
"경제비용 당연시하는 푸틴, 마음 바꿀지는 미지수"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러시아 경제가 서방 제재에도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중병을 키우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제기된다.
1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끝내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러시아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러시아 재무부 관리들은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러시아가 올해 수십년만에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 같은 전망은 최근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강조하는 루블화 안정, 무역흑자 증가와 거리가 있는 것처럼 비친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서방 제재가 부과되자 루블 가치가 떨어져 금융위기설까지 나돌았으나 회복에 성공했다.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 수출대금의 루블 환전 의무화, 자본탈출 통제로 급한 불을 끄고 고유가에 따른 외화수입 증가를 앞세워 루블을 떠받쳤다.
결과적으로 제재의 충격이 금융위기를 통해 소비자에게 눈에 띄게 바로 전가되는 사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루블화 가치 안정화를 지목하며 제재 충격에 자신 있게 대처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태는 겉모습일 뿐이라며 세부 지표를 보면 실물경제가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방은 러시아 주요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에서 퇴출하고 러시아에 핵심 부품이나 기술을 팔지 못하도록 제재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달 11일 보고서를 통해 루블 가치 상승은 서방 제재의 충격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제재와 외국기업들의 거래 중단 탓에 수입이 줄었다며 가뜩이나 통제를 받는 시장에서 외화 수요가 그 때문에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은행 오트크리티예의 최근 설문결과를 보면 러시아인 58%는 매점에서 식료품 부족을 목격했으며 33% 정도는 사재기에 나섰다고 답변했다.
독립적인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러시아인 85%는 비싼 물품 구입이나 대출을 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답변했다. 이는 10여 년 만에 최악으로 관측된 소비심리 위축이다.
러시아의 올해 4월 자동차 판매는 작년 같은 시기보다 80% 줄어 사상 최대폭을 기록했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은 소련 시절 브랜드를 부활시켜 자급자족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전방위 제재 속에 부품을 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경제학자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경제가 '산업화 퇴행'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인들이 1990년대처럼 떼를 지어 중국이나 터키로 건너가 의류 같은 소비재를 사서 자국에 되파는 '보따리 장사'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연구기관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러시아 경제 분석가인 스콧 존슨은 "제재의 전체적 타격 현실화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러시아 경제는 재편을 거쳐 더 불량하고 더 느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경제가 속으로 곪아가는 상황에서 결정타는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금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을 통해 하루 10억 달러(약 1조2천700억원) 정도를 벌어들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원유, 천연가스 수입 금지를 목표로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원을 확충하며 수입처를 대체하는 등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점점 더 타격을 받아 고통이 가시화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침공을 멈출지는 미지수다.
푸틴 대통령은 경제충격을 우크라이나 점령을 위해 감수해야 할 고통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올해 2월 24일 침공일에 러시아 재벌 37명을 크렘린궁에 불러 경제 타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국가 존립을 위한 서방과의 건곤일척으로 보고 경제적 비용에 신경을 안 쓴다고 러시아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경제분석가 존슨은 "가계와 기업이 떠안게 되는 고통이 크렘린궁의 대외정책에 어떤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할 일"라고 말했다.
영국 컨설팅업체 컨트롤리스크스의 옥사나 안토넨코는 "극단적 제재가 부과되지만 변하지 않는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도 있다"고 설명했다.
jang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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