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수확기 이후엔 곡물 쌓아둘 곳도 없어 상황 더욱 악화"
러시아 압박·우크라이나 기뢰 제거·터키 해상호위 허용 필요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세계 식량위기를 해결하려면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 봉쇄를 풀어야 하지만 이는 묘수가 잘 보이지 않는 미션이다.
세계 '식량 바구니'인 우크라이나에서 수출 길이 막히면서 주요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세계적인 기아 우려가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오데사 항구가 열리려면 비서방 국가들이 러시아를 압박하고, 터키가 해상 호위를 허용하며, 우크라이나가 대 러시아 기뢰제거에 나서야 하는데 어느 하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재앙적 식량위기 경고음…곡물가격 급등
코로나19, 기후변화 등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타를 날리면서 재앙적인 수준의 세계 식량위기 경고가 긴박하게 잇따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의 28%, 보리 29%, 옥수수 15%, 해바라기유 75%를 공급하는데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은 대부분 중단됐고 러시아도 어려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수출되는 식량은 4억명을 먹일 수 있는 분량이다.
레바논과 튀니지로선 수입 곡물의 약 절반이 두 나라에서 오고 리비아와 이집트는 비중이 3분의 2에 달한다.
밀 가격은 이미 올해 53% 뛰었고, 인도가 폭염 때문에 수출을 중단한다고 밝힌 16일에는 6% 더 올랐다.
문제는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에선 농부들이 6월 말부터 수확하는 곡물을 저장할 곳이 없고, 그 이후엔 파종에 필요한 연료나 노동력이 부족하다.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해운 터미널 운영 업체 소유주는 수확을 해도 썩어버릴 것이라면서 "오데사 봉쇄 해제는 무기 지원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를 굶기겠다는 푸틴의 위협…오데사 항구 열어야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푸틴이 어떻게 세계를 굶주려 복종시키려 하는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항구를 봉쇄하고 곡물을 훔치고 농업기반시설을 파괴하면서 식량을 무기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여러 지역의 곡물 저장고를 파괴했고 3월엔 하르키우 낙농장을 공격해서 수백마리 소를 죽였다.
그래도 오데사 항구 봉쇄를 풀면 식량 위기는 즉시 완화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세계 최빈국의 연간 소비량에 해당하는 2천500만t의 옥수수와 밀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와 도로를 통해 루마니아나 발트해 연안 항구로 운송할 경우 수확량의 20%만 옮길 수 있어서 오데사 항구 확보는 중요하다.
◇오데사 항구 봉쇄 풀려면…러시아 설득·기뢰·해상 호위 등 난제
오데사 항구를 통해 식량을 수출하려면 러시아가 항구를 열어주고, 우크라이나는 오데사 해안에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며 터키는 상선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날 때 호위를 허용해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분석했다.
그러나 당장 우크라이나로서도 기뢰 제거에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일 자체가 복잡한 데다가 러시아가 상륙 공격을 해올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해상 호위는 군사적, 법적, 정치적 제약을 넘어야 한다.
군사적으로 러시아 기함 모스크바호가 침몰하긴 했어도 흑해에서 러시아 해군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미국 네이벌 워 칼리지의 마이클 피터슨은 오데사는 크림반도에 있는 러시아 순항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또 호위대에 상당 규모 나토 해군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이는 교전시 군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몽트뢰 협약과 충돌할 수 있다.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직접 나서주면 좋겠지만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나토 전 연합군 최고 사령관인 제임스 스타브리디스는 이란-이라크 전쟁 중 미국과 동맹국들의 페르시아만 유조선 보호 작전을 참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전 나토 사령관 제임스 포고는 당시 이란과 달리 러시아는 핵 보유국이고 강대국이라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희망은 중국, 인도 등과 같은 비서방 국가들이 러시아를 설득, 압박하는 것이다.
서방국가들은 유엔에서 오데사 개방 요구 발의안을 제출하며 식량위기와 관련해 러시아 책임을 부각시킬 수 있다.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해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비난을 맞받아치고 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 차관은 오데사 항구 봉쇄를 풀려면 서방 제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식량위기의 복합적인 원인을 들여다봐야 한다면서 그 예로 미국과 EU의 러시아 제재를 들었다.
서방 외교관들은 오데사 항구 봉쇄 해제는 적어도 6개월간은 현실적인 옵션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이코노미스트지가 전했다.
우크라이나에선 아예 러시아를 향해 대응 사격을 할 사람이 없다면 해상 호위는 의미가 없고 유일한 답은 러시아를 이기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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