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중 시행…정부, 법적 의무화보다 자율적 도입 유도
"강제하면 거래처 해외 전환·소비자 가격 인상 등 우려도"
(세종=연합뉴스) 차지연 김다혜 기자 = 정부가 구리, 알루미늄 등 공인된 시장가격이 있고 생산 때 활용 비중이 큰 일부 원자재 품목을 중심으로 표준계약서를 활용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하반기 시범 운영한다.
22일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자율적인 납품단가 연동을 유도하는 시범사업의 세부 운영방안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하도급·위탁 업체가 원사업자로부터 받는 납품단가도 증액 또는 감액되도록 하는 제도로, 중소기업계가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행 하도급법과 상생협력법도 원자잿값 등 공급원가가 변동됐을 때 하도급·수탁기업이 납품 대금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거래 단절 등을 우려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원사업자가 반드시 납품단가를 조정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정위가 최근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이 42.4%에 달했다.
이에 조정 신청·협의 없이 자동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18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중소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하반기 중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운영하고 이를 토대로 시장과 기업의 수용성이 높은 연동제 도입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하반기 시범 운영하려는 납품단가 연동제는 개별 기업이 연동 대상 원자재, 기준가격, 납품단가 조정 시기와 방법 등을 명시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방식이다.
연동제 대상 원자재 품목은 원자재 활용 비중, 공인된 시장가격 유무 등을 고려해 결정할 전망이다. 구리, 알루미늄 등 공인된 시장가격이 있고 생산 활용 비중이 큰 품목들이 우선으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중기부가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참여 기업의 피드백 등을 토대로 납품단가 연동제 공식 도입 여부와 방안을 추가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공정위도 8월 납품단가 연동 내용을 담은 모범계약서를 제정·배포하는 등 자발적인 납품단가 조정을 유도할 계획이다.
다만 납품단가 연동제를 기업이 자율적으로 도입하도록 권장하는 것을 넘어 의무화하는 것은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에는 이미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으나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하도급법·상생협력법 개정안은 계약서에 원자재 기준가격을 기재하고 해당 원자재 가격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 오르면 추가로 발생한 비용을 납품 대금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지급하지 않으면 공정위나 중기부 장관이 시정조치·이행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은 원자재 가격이 10%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 오르거나 내릴 때, 최저임금이 오르거나 내렸을 때 변동분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약정서에 기재하도록 하는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에는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국회 전문위원의 관련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공정위는 "취지는 공감하나 하도급 업체에 대한 보호 효과 이외에도 시장의 효율성 저해 등 부정적 측면도 고려해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원사업자가 규제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거래처를 해외 기업으로 전환하거나, 늘어난 비용만큼 제품의 판매 가격을 인상해 소비자 부담이 증가하고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중기부 역시 "납품 대금 조정 대상이 되는 제반 기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시장의 공감대 형성이 먼저 필요하고, 연동제 의무 시행 시 원가 절감에 대한 중소기업의 혁신 의지가 저해될 우려가 있다"며 법적 의무화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납품하는 제품이 수도 없이 많은데 현실적으로 얼마를 어떻게 언제까지 연동해야 한다는 규칙을 세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률적으로 법으로 연동제를 도입하면 경제가 경직되고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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