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아이 키우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사회' 만들어 가는 육아 전도사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로 큰일이란 생각이 든다. 적령기를 훌쩍 넘긴 미혼자가 너무나 많아서다.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고착화한 미혼 인구 급증은 젖먹이의 울음소리를 잦아들게 하는 요인이다. 국가소멸 우려까지 낳는 이 사태의 배경을 따질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육아 문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너무나 고달픈 사회환경 때문에 결혼 계획을 접는 혼포족(婚抛族)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태동한 '맘시터'는 신생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연령대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가 돌봄 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매칭(중개) 플랫폼이다.
2016년 9월 시작된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출시 5년 5개월 만인 올해 2월 전체 이용자(회원)가 전국적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고, 현재는 115만 명 수준으로 더 늘었다.
회원 비율은 아이 돌봄 서비스를 받는 쪽인 부모가 35%, 서비스 제공자인 '시터'(sitter)가 65% 정도로 나뉜다.
맘시터 운영 스타트업인 '맘편한세상'은 작년 9월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기술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는 단계 투자)를 유치해 아이 돌봄 연결 플랫폼 국내 1위 기업 위상을 굳히면서 육아 종합 포털로 도약하고 있다.
시리즈B 투자에는 기존 투자업체인 디티앤인베스트먼트 외에 KDB산업은행, KTB네트워크 등이 신규로 참여해 기관투자업계가 맘시터의 성장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우리가 풀고 있는 문제, 저출산 해결로 이어질 것"
'맘편한세상'의 정지예(35) 대표는 다섯 살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연세대에서 정보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5년가량 직장생활을 했다. 그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좋은 시터를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해 창업 전선에 뛰어든 동인은 일하는 여성으로서 보고 겪으면서 느낀 육아 문제에 대한 절박감이었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눈물 훔치며 일을 그만두는 동료와 선후배들을 수없이 접하면서 해법을 생각했다.
"아이 키우려고 직장을 떠나는, (일을 위해) 아이를 안 낳거나 아예 결혼도 안 하는 선택을 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습니다. 나는 예쁜 가정을 꾸리고 커리어도 잘 가꿔 나가고 싶은데 불가능한 건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그런 고민을 하게 됐어요."
정 대표는 육아 문제가 자신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임을 자각했다.
그 과정을 거쳐 문제 풀이 수단으로 구체화한 것이 맘시터였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정 대표는 시터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면 육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아이 돌봄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저출산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출생아는 줄고 있지만 1인당 소비액이 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커지는 것이 육아 시장이다.
그런데도 많은 부분이 아직도 혁신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정 대표의 진단이다.
맘시터는 부모 회원이 시터 회원 연락처를 한 달간 무제한 열람하는 대가로 3만원짜리 티켓을 구매토록 하는 방식의 수익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연간 2천억원 규모인 맘시터 회원 간 거래에는 플랫폼이 관여하지 않는 구조여서 매칭이 성사된 후 어려움이나 불편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에 따라 플랫폼을 통해 매칭에서 결제까지 서비스 이용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끝내고, 당사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고도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C2C(개인 간 거래) 중심의 플랫폼 서비스는 B2B(기업 간 거래)로 확장하고 있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같은 사업 모델로 추격해 오는 신규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정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선 육아 시장은 혁신이 더딘 시장이어서 발전하려면 더 많은 업체가 생겨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담담하게 반응했다.
◇ "창업 환경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정 대표에게 창업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몇 년 동안 내가 가진 돈과 기회와 시간을 불태우며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일'이라고 했던 말을 상기하면서 "정말로 내가 풀고 싶은 문제를 집요하게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부연했다.
정 대표는 예전에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하면 빚더미에 올라앉았지만 지금은 망하더라도 창업자 개인에게는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라고 했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창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가 갖춰져 있어 누구라도 재정적인 리스크 없이도 창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맘시터도 창업진흥원 등의 지원 사업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했다고 했다.
다만 전반적인 창업 지원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개선이 필요한 점으로 꼽았다.
한 사례로 모태펀드를 통해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483곳 가운데 여성이 대표인 기업은 5.8%인 28개밖에 안 된다는 점을 들었다.
정 대표는 투자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육아가 그렇게 힘든가요'라는 질문을 받는 등 여성이 겪는 문제에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를 적잖게 경험했다며 여성들이 창업 분야에서 더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 "작은 기업 근로자, 배려했으면"
정 대표는 아이 돌봄 시장에서 중소기업 근로자들에 대한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이나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인 사업장'을 대상으로는 고정비가 많이 드는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해 대기업 근로자의 경우 육아 도움을 상대적으로 쉽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나 근무 환경이 한층 열악한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지적한 정 대표는 하나의 대안으로 다양한 형태의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는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누구나 부담 없이 돌봄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세제 지원이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소득·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제언했다.
◇ 10년 후엔 어떤 기업으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창업 세계에서 그 10년은 죽음의 계곡을 몇 차례나 넘어야 할 긴 시간이다.
채 6년도 안 되는 기간에 국내 아이 돌봄 연결 플랫폼 1위 기업을 만든 정 대표는 10년 후의 맘시터 미래상으로 '글로벌 1위' 도전을 언급했다.
돌봄 서비스 분야의 세계적 플랫폼 기업인 케어닷컴(care.com)을 라이벌로 삼아 회사를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육아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우리나라 육아 문제를 풀면 다른 나라의 문제 해결에도 우리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대표는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사회, 시터와 함께 아이 키우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 되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힘을 보태겠다"며 이 비전을 토대로 여러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 코너를 통해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하는 스타트업 CEO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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