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진행자도 '마스크 착용' 통해 여성과 연대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 탈레반이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의 얼굴을 가리라는 지시를 내리자 현지 방송인 사이에서 항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톨로뉴스 등 아프간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지난 19일 탈레반 정부가 이런 지시를 한 후 방송가에서는 소극적이지만 뚜렷한 반발 움직임이 포착됐다.
탈레반의 지시가 강압적이라 어쩔 수 없이 마스크 등을 쓰며 따르기는 하지만 저항해 나가겠다는 의사만큼은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톨로뉴스의 여성 앵커 소니아 니아지는 AFP통신에 "그들(탈레반)은 우리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요했지만 우리는 목소리를 이용해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니아지는 "나는 이번 명령으로 인해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다른 아프간 여성을 위한 목소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프간 TV의 여성 진행자 대부분은 탈레반의 이번 지시 이전까지는 머리와 목 등만 가리는 스카프를 착용하고 방송에 참여해왔다.
톨로뉴스의 임원인 흐폴와크 사파이는 "(탈레반으로부터) 전화로 엄한 지시를 받았다"며 여성 진행자의 마스크 착용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의 지시에 항의하고 여성 앵커와 연대한다는 표시로 톨로뉴스, 1TV 등 주요 뉴스 채널의 남성 진행자들도 마스크를 쓰고 진행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탈레반은 지난 7일 여성에 대해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모두 가리는 의상 착용을 의무화했다.
당시 탈레반 최고 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샤리아에 따라 매우 연로하거나 어리지 않은 여성은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려야 한다"며 바깥에 중요한 일이 없다면 여성은 집에 머무르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이슬람권에는 여성의 머리나 몸을 가리는 여러 전통 의상이 있다.
이 가운데 부르카(눈 부위만 망사로 뚫린 채 얼굴 등 온몸을 가리는 복장)와 니캅(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복장)이 얼굴을 가리는 대표적인 의상이다.
탈레반은 1차 집권기(1996∼2001년) 때 샤리아를 앞세워 공포 통치를 펼쳤다.
당시 탈레반은 음악, TV 등 오락을 금지했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했다. 여성은 부르카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다.
탈레반은 재집권 후에는 여성 인권 존중 등 유화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다시 이슬람 질서 강화에 힘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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