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아세안 7개국 등 13개국 참가…공급망·디지털 경제 협력 강화
정부 "향후 논의 주도적 참여"…'반중 연대' 논란엔 "중국 배척 아니다"
국회비준 대상 아냐…시장개방 등 향후 논의결과 따라 비준 필요할수도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 = 미국 주도로 23일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는 기존 자유무역협정(FTA)과 달리 공급망·디지털 결제·청정에너지 등 신(新)통상의제를 다룰 예정이어서 국내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한미일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7개 회원국 등 총 13개 국가가 참여해 반도체·핵심 광물 등의 공급망 위기에 공동 대응하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과 디지털 경제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며 향후의 논의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반중 연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부는 "중국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고 일축하면서 다른 채널을 통한 중국과의 협력 강화 방침을 강조했다.
IPEF가 공식 출범했지만, 세부 운영 규칙과 내용을 확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 현재로서는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지만 향후 시장 개방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경우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할 수도 있다.
◇ 한미일 등 13개국으로 출범…공급망·디지털 경제 등 협력 강화
IPEF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전통적 우방이 이름을 함께 올렸다.
또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7개국이 참여했다.
반면 친중 성향이 강한 캄보디아와 라오스, 미얀마 등은 참여하지 않았다.
세계 인구 2위인 인도가 동참하면서 사실상 중국이 주도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일본 등이 참여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규모 통상 협력체로 평가된다.
IPEF는 상품과 서비스 시장 개방을 목표로 하는 기존의 FTA와 달리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불거진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디지털 경제, 첨단기술 분야 등에서 공조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통상 협력체다.
구체적으로 무역, 공급망, 탈탄소 및 인프라, 탈세 및 부패 방지 등 4개 주제를 중심으로 참여국의 경제 분야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데 특히 반도체·배터리 등의 핵심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한 가운데 역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 "국익에 큰 기여"…출범 후 논의 주도 방침
정부는 IPEF가 국익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출범 후 논의 초기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IPEF를 통해 반도체·핵심 광물 등의 분야에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공급망의 다변화와 안정화도 꾀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또 공급망 교란 행위 발생 시 IPEF를 통한 공동 대응도 가능하다.
공급망 위기 대응 협력 방안으로는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등이 거론된다.
정부는 또 미국·일본 등 참가국과의 협력 촉진을 토대로 디지털 경제 및 AI·양자컴퓨터·클린에너지 등 신기술 분야 관련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탈탄소, 인프라 투자, 공동 프로젝트 참여를 통한 국내 기업의 인도·태평양 시장 진출 기회가 확대되는 것도 기대효과 중 하나다.
이런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IPEF 출범 직후 초기 단계부터 후속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공급망·디지털·탈탄소 등에 대한 글로벌 규범을 마련할 때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초기부터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박선민 연구위원·이유진 수석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IPEF를 국내 기업과 국가의 실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美주도 IPEF, 中주도 RCEP '대항마' 성격…정부 "중국 배척 아니다"
미국이 주도한 IPEF는 중국 주도의 세계 최대 규모 FTA인 RCEP의 '대항마'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글로벌타임스는 최근 논평에서 IPEF를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IPEF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에 투자했거나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큰 기업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보복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IPEF는 중국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며, 개방성·투명성·포괄성 등의 원칙을 기반으로 협력하는 플랫폼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왕윤종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의 전체 성명에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한다는 문구는 단 한 줄도 없다"고 밝혔다.
◇ 국회 비준 동의 대상 아냐…향후 논의 결과 따라 달라질 수도
IPEF는 현재의 출범 상태만 놓고 보면 아직은 선언적 성격이 짙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할 대상은 아니다.
FTA·RCEP·CPTPP 등처럼 상품·서비스 시장 개방을 전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보통 무역 협정 시 의회 보고 후 권한을 일임받아 협상을 진행하는데 이번 IPEF는 의회에서 권한을 부여받은 사항도 아니다.
다만 향후 논의 과정에서 RCEP·CPTPP 등처럼 시장 개방 사항이 포함되거나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규범이 반영될 경우에는 국회에 보고해야 하고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올해 2월 국내에서 발효된 RCEP의 경우 2012년 협상을 시작해 발효될 때까지 10년이 걸렸다. 논의 초기에는 한중일과 아세안 국가들만 참여했다가 협상 과정에서 총 15개국으로 참여국이 늘었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논의 과정에서 시장 개방 등의 사항이 포함되면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칠 수도 있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논의를 진척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ak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