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쩐 추기경 체포가 신자들 사이 충격파 보내"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천주교 홍콩교구가 홍콩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우려로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미사를 열지 않는다.
천주교 홍콩교구는 24일 홍콩 언론에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 미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에 대한 일선 동료들의 우려로 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교구는 이러한 결정이 "추모 미사를 불허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전했다.
천주교 홍콩교구는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를 추모하기 위해 이듬해부터 매년 6월 4일 추모 미사를 열었다.
교구 내부 관계자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최근 조지프 쩐(90) 추기경의 체포가 시민사회, 특히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 충격파를 보냈으며, 추모 미사 개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1일 홍콩 경찰은 천주교 홍콩교구장을 지낸 쩐 추기경 등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의 신탁관리자 5명을 국가보안법상 외세와 결탁 혐의로 체포했다.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은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기소 위기에 처하거나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2억4천300만 홍콩달러(약 396억원) 이상을 어려운 이들에게 지원했다.
홍콩 경찰은 이들이 "외국 조직에 홍콩에 대한 제재를 촉구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쩐 추기경 등은 체포 당일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는 아직 기소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을 사회조례에 따라 단체로 등록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날 법원에 출두해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해당 기금이 매우 개방적인 방식으로 운영돼왔다며 사회조례에 따라 등록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쩐 추기경은 수십년간 홍콩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매년 톈안먼 추모 행사에 참여해왔다. 지난해 6월 4일에도 성 앤드류 천주교회에서 수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톈안먼 시위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
당시 쩐 추기경은 당국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6월 4일의 비극은 서서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국이 소위 공익을 위해 애국적인 젊은이들을 죽일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면 비극은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SCMP는 전했다.
홍콩에서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6월 4일 저녁 빅토리아 파크에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가 주최한 톈안먼 추모 촛불 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지난해 당국이 코로나19를 이유로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하면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집회가 열리지 못했다. 당시 시민들은 이에 항의해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촛불을 들어올렸다.
이후 지련회가 당국의 압박 속에 지난해 9월 해산하고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된 가운데 당국은 올해도 코로나19를 이유로 6월 4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지정되지 않은 행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빅토리아 파크가 축구 경기장이라고 밝혔다.
빅토리아 파크 촛불 집회는 중화권에서 유일하게 개최돼온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행사로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상징해왔다. 중국에서는 당국이 유혈 진압한 톈안먼 민주화시위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고 있다.
지난해 말 홍콩대 등은 교내에 설치돼 있던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기념물을 철거했고 당국은 지련회가 온·오프라인에 축적해온 역사적 자료들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홍콩 민주진영에서는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이제 홍콩에서도 톈안먼 시위 추모 행사가 열리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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