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거치며 포퓰리즘 세력 득세…'정책' 아닌 '정치'가 우선"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대외 강경책을 주장해 온 미국의 대표적 '매파'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최근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고 나섰는데, 이는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내부에 자국 우선주의 표퓰리즘이 확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달 중순 하원에서 400억달러(약 50조원) 상당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법안이 표결에 들어가기 몇 시간 전 헤리티지 재단과 연계된 로비스트들은 공화당에 반대표를 넣으라고 압박했다.
당시 법안은 찬성 368 대 반대 57로 통과됐는데,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모두 공화당 소속이었다.
헤리티지 재단의 지도부는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헤리티지재단 로비단체인 '헤리티지액션'의 제시카 앤더슨 전무이사는 미국이 인플레이션과 부채, 범죄, 에너지 등 국내 문제를 제쳐두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우선시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케빈 로버츠 헤리티지 재단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유사한 법안에 맞서 싸우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는 우파적 이념과 강력한 국방력 등에 기초해 대외 강경 외교정책을 내세우던 대표적인 보수 매파 헤리티지 재단이 보인 기존 행보와는 결이 다르다고 NYT는 지적했다.
헤리티지 재단 출신인 에릭 세이어스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매우 놀라운 점은 항상 러시아에 강경하고 나토를 강조하던 헤리티지 재단이 매우 이상한 방향으로 틀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단체 안에서 포퓰리즘 세력이 득세한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재단에서 나오는 보고서 내용과 지도부, 로비스트가 표출하는 이념은 상반되는 모양새다.
재단 소속 정책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대규모 지원을 포함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달 발간된 보고서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은 미국과 나토에 이익이 되는 전반적인 유럽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미국의 행동을 촉구했다.
이전에 재단에서 정책 연구를 이끌었던 제임스 월너는 보고서의 어조와 단체의 행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정책 원리가 아닌 '정치'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헤리티지 재단은 2010년대 극우성향 조세 저항 움직임인 '티파티'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초기 외교·안보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포퓰리즘 기류가 강해졌다고 NYT는 전했다.
재단은 한때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이제 이와 연계한 로비 단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 근간이었던 '반(反)개입주의'를 수용하게 됐다고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구호에서부터 내세웠던 '미국 우선주의'는 임기 내내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관통했다. 그는 유럽 동맹의 나토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는가 하면, 세계적으로 미군 주둔 병력이 축소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헤리티지 재단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보수 단체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맡았던 러셀 보트가 이끄는 '미국을 새롭게 하는 시민들'(CRA)은 최근 우크라이나 지원안에 반대하는 로비를 펼쳤고, 공화당 기부자 모임인 코흐 네트워크가 지원하는 '미국을 걱정하는 재향군인'(CVA)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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