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금 대출 제한되는 9억원 초과 아파트 청약 경쟁률 '뚝'
고분양가 심사제 개선에 분양가 '쑥'…상한제도 손질 앞둬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고강도 대출 규제로 분양가에 따른 수요자들의 선별 청약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정부가 지방선거가 끝나는 6월 1일 이후 분양가상한제 개편과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와 같은 양상이 크게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전국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 청약경쟁률 급락
29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9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올해 들어 지난 20일까지 9.4대 1을 기록해 지난해 평균 64.7대 1 대비 급락했다.
같은 기간 6억원 초과∼9억원 이하는 31.3대 1에서 20.9대 1로, 6억원 이하가 17.3대 1에서 9.2대 1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하락률이 훨씬 가파른 셈이다.
전체 평균 청약 경쟁률 하락폭(19.5대 1→11.5대 1)보다도 크다.
정부는 분양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2016년 7월부터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중도금 대출 보증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중도금대출은 시행사나 건설사 등의 사업 주체가 HUG나 HF로부터 보증서를 받아 금융사에서 중도금을 빌린 뒤 계약자에게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집단 대출'이라고도 불린다.
분양가 9억원 이하 주택은 규제 지역 여부에 따라 중도금 대출을 40∼60%까지 받을 수 있다.
반면 9억원을 초과하면 중도금 대출을 사실상 모두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통상 계약금과 중도금이 각각 20%, 60%인 점을 고려하면 분양가가 10억원일 경우 8억원은 수중에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분양가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사업 주체의 알선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중도금 대출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대출 금리가 높아 금리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다 결정적으로 올해부터 입주자모집공고를 하는 단지는 잔금대출이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됨에 따라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의 청약 인기가 급격히 식은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1월부터 총대출액 2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자에게 개인별 DSR 규제가 1금융권은 40%, 제2금융권은 50%로 적용되고 있는데 오는 7월부터는 총대출액 1억원 초과 대출자로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올해 모집공고를 받는 단지부터 잔금대출 시 개인별 DSR 규제를 받게 되면서 청약 통장 사용에 분양가가 주요 변수로 고려되고 있다"며 "올해 7월부터는 DSR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연말까지 추가 금리 인상 압력도 높아서 청약 실수요자들이 자금 계획을 짜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잿값 급등에 따른 공사비 인상으로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DSR 규제 강화, 금리 인상 등이 맞물려 갈수록 분양 열기가 사그라들고 있다"며 "집값이 많이 오른 만큼 중도금 대출 보증 상한선을 올리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대출 때문에 청약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분양가 상승 압력 커지는데…서울서도 청약 계약 포기 속출
청약 열기가 꺾이면서 집값 급등기에 '청약 불패'로 여겨졌던 서울에서도 당첨자들의 계약 포기가 잇따르고 있다.
이날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삼양사거리특별계획3구역 재개발)는 전용면적 39㎡A 3가구, 53㎡A 21가구, 53㎡B 1가구, 59㎡A 11가구, 80㎡A 46가구, 84㎡A 36가구, 84㎡B 21가구 등 총 139가구에 대해 내달 2일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
이 단지는 일반분양에서 328가구(특별공급 물량 제외)를 모집했는데 청약 당첨자의 58%만 계약하면서 무순위 청약에 나선 것이다.
무순위 청약이란 일반분양 당첨자 계약일 이후에 나온 계약 포기자나 청약 당첨 부적격자로 주인을 찾지 못한 가구에 대해 청약을 받아 무작위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는 것을 말한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100% 추첨제로 당첨자를 뽑아 '줍줍'이라고도 불린다.
청약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하면 당첨일로부터 최대 10년간 재당첨이 제한되는데도 강화된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상당수가 고민 끝에 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북구에 있는 이 단지는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아 분양가가 높게 책정됐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미계약이 집중된 전용 84㎡형의 경우 분양 가격이 10억8천921만∼11억5천3만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지난달 진행된 1순위 청약의 경쟁률이 한 자릿수인 7.3대 1에 그친 바 있다.
올해 강북구에서 1순위 청약을 진행한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미아3구역 재개발), 수유동 '칸타빌수유팰리스'(강북종합시장 재정비)도 청약 당첨자의 계약 포기가 속출했다.
이 밖에 구로구 개봉동 '신영지웰에스테이트개봉역',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더하이브센트럴'과 신림동 '신림스카이아파트', 동대문구 장안동 '브이티스타일' 등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서울에서도 청약 당첨자의 계약 포기에 따라 무순위 청약으로 이어지는 단지가 많아졌다.
이들 지역은 투기과열지구지만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고 HUG의 고분양가 심사를 받는 지역이다.
고분양가 심사제도는 주택 분양보증 심사 업무의 연장선으로, HUG는 정부 규제지역(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 제외)에서 분양가가 일정 기준보다 높으면 보증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고분양가를 통제한다.
HUG는 분양가가 과도하게 낮게 산정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9월 30일부터 주변 시세를 충분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심사 기준을 개선했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작년 10월 1일부터 이달 27일까지 전국 민간분양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5억5천545만원으로, 작년 1∼9월 민간분양 아파트 평균 분양가(4억8천378만원) 대비 약 8개월새 14.8% 올랐다.
고분양가 심사 제도 개편에 이어 윤석열 정부는 내달 중 분양가상한제를 손질할 계획이다.
앞선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2·16 대책'을 통해 집값 상승 선도지역과 정비사업 이슈 지역으로 꼽힌 서울 13개구와 경기 3개시(하남·광명·과천) 322개 동을 상한제 대상 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정부가 조만간 분양가상한제 개편과 대출 규제 완화를 예고했지만, 상한제는 대폭 수정이 아닌 원자잿값 상승 등에 따른 미세 조정, 대출은 실수요자 중심의 규제 완화에 각각 무게를 두는 상황"이라며 "서울에서도 입지적으로 열세이거나 상대적으로 주변 시세와 별반 차이가 없는 고분양가 단지는 외면받는 '옥석 가리기' 현상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 수석연구원도 "원자잿값과 공사비 인상으로 분양가 현실화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등 자금 부담이 커진 청약 수요자들이 선별 청약에 나서면서 입지나 분양가에 따른 양극화 흐름이 확대될 것"이라며 "같은 단지 안에서도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소형 면적의 경쟁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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