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서 외교장관회의…지원 매개로 전략적 거점 확보 시도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이 30일 남태평양 섬나라들과 외교장관회의를 갖고 미국이 인도·태평양에 쳐 놓은 중국 포위망을 뚫을 전략적 돌파구를 모색한다.
중국 관영 통신 신화사에 따르면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피지에서 제2차 중국-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를 주재한다.
중국과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니우에, 쿡제도, 미크로네시아 등이 참가하는 이번 회의에서는 안보·경제 협력 확대 방안을 담은 '포괄적 개발 비전'이 논의된다.
외신에 보도된 포괄적 개발 비전 초안에는 중국이 태평양 섬나라들과 안보 협력 관계를 맺고 중국 공안을 파견해 해당 국가의 경찰을 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사이버 보안 문제 등 네트워크 협력 강화, 각국과의 정치적 관계 확대, 해도(海圖) 작성,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권 확대 등도 포함됐다.
아울러 남태평양 10개국에 대한 중국의 수백만 달러 규모 지원, 중국과 남태평양 국가들 간 자유무역협정(FTA) 전망,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 등이 담겼다.
지난 4월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체결한 안보 협력 협정을 다른 남태평양 도서국들로 확대하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20∼24일)후 6일만에 열리는 이번 회의에 담긴 대미 전략적 의미에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다.
한일 순방 기간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견제에 방점 찍힌 인도·태평양 전략 아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왕 부장의 남태평양 섬나라 8개국 순방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이번 외교장관 회의는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나라들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인·태 전략을 흔든다는 구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중국은 남태평양 섬나라들과의 협력에 대해 "제3자를 겨냥하지 않는다"면서 군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외부의 시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호주 등 서방은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차원의 인프라 지원 등을 매개로 삼아 현지에 군사적 거점을 마련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7년 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기지를 개설한 중국이 향후 상황에 따라 남태평양에도 군사기지를 만들거나, 군함이 기항할 수 있도록 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이런 의심이 현실이 된다면 당장 호주는 중국의 상시적 견제를 받게 되면서 발이 묶이게 될 수 있다. 호주 군함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미군과 함께 중국 견제 활동에 적극 참여하길 바라는 미국의 구상은 흐트러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으로서도 동맹국 호주의 중국발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므로, 대만 주변 동중국해와 중요한 해상 수송로인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견제에 군사 역량을 집중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자금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진 키리바시의 활주로 개보수 사업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이 활주로 개보수를 지원한 대가로 활주로 이용 권한을 얻어 중국 군용기의 이·착륙이 가능해진다면 미국에는 큰 우려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키리바시 정부는 활주로와 관련한 중국과의 군사·안보 협력에 선을 그었지만,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에서 3천km 떨어져 있는 키리바시의 전략적 중요성이 큰 까닭에 미국은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왕 부장은 26일부터 시작한 순방에서 각국과의 각종 협력사업 합의를 통해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솔로몬 제도와는 무관세 혜택 제공, 무역·투자 편리화, 체육시설 및 병원 건설 지원, 방역 지원, 법 집행 협력, 경찰력 구축 지원, 민간 항공 수송 협력, 기후변화 지원 등에 합의했다.
또 키리바시와는 방역 협력 및 일대일로 건설 협력 강화, 기후변화 협력, 재해 방지 및 인프라 협력, 사모아와는 친환경 발전 및 기후변화 협력, 경찰학교 건설 지원 등에 각각 합의했다.
다만 중국의 접근에 긴장감이 커진 미국과 호주도 남태평양 국가들에 공을 들이고 있어 이들 국가가 중국 쪽으로 확 쏠리게 될지는 미지수다.
이번 중국 주도의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는 피지부터 당장 남태평양 섬나라로는 처음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IPEF에 참여키로 한데서 보듯 이들 섬나라가 나름의 '균형 외교'를 통해 미국·호주·뉴질랜드 쪽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극대화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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