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훈련 등 민감 내용 빼고 지원 방안들 우선 독자적 발표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은 남태평양 10개 섬나라들과 안보·경제 협력, 지원 등을 포괄하는 협정을 체결하려던 시도가 일부 국가의 이견에 가로막히자 '단계적 접근'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지원 내용을 우선 독자적으로 공개한 뒤 민감성이 큰 안보 관련 내용은 개별 국가와의 양자 관계 차원에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30일 피지에서 열린 중국-남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 후 홈페이지에 올린 '태평양 도서국과의 상호존중, 공동발전에 대한 입장 문건(이하 문건)'에 남태평양 섬나라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 방안을 담았다.
문건에는 사이버 범죄 척결 등 비전통적 안보 위협 공동 대응, 인프라·농림·어업·에너지·광산·전자상거래·정보 통신·관광 등 분야에서의 상호 협력 심화, 해양 예보 및 재해 경보 협력, 방역 지원, 중국 시장 접근 확대, 장학금 제공 등이 포함됐다. 이들 내용은 주로 '협력'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중국이 섬나라들을 지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초 중국이 협정 형식으로 추진했던 '포괄적 개발 비전'의 초안에 포함됐던 도서국가 경찰 훈련 및 공안 파견, 해도(海圖) 작성 등 안보상 민감한 내용은 문건에 적시되지 않았다.
또 '포괄적 개발 비전' 초안에 있었던 자유무역협정(FTA) 가능성 거론 내용도 문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협정이 불발되자 초안의 내용 중 이견의 소지가 덜한 내용을 발췌해 중국이 독자적 지원 구상 형식으로 발표한 것이다.
30일 회의에 맞춰 중국이 야심 차게 준비한 '포괄적 개발 비전'은 미크로네시아를 포함한 일부 국가가 이견을 내면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중국 측 제안에 대한 태평양 도서국들의 이견은 경찰 훈련 및 공안 파견 등 안보 관련 내용에 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 대통령은 최근 다른 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불필요하게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지역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며 자국은 중국의 구상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20∼24일)을 계기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구체화한 데 맞서 도서국들과의 안보·경제협력 협정을 통해 남태평양에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중국과의 협정 체결에 대한 미국과 호주 등의 강한 견제 속에서 일부 도서국이 미·중 갈등에 깊이 연루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협정 체결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태평양 도서국들의 의사결정 구조상 추가 조율을 거쳐 협정을 체결하려면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즉, 우선 독자적 지원 구상 형식으로 덜 민감한 내용부터 발표한 뒤 각국과의 개별 협상을 통해 민감한 분야에서 협조를 구하는 '선이후난'(어려운 것은 뒤로 미루고 쉬운 것부터 처리함)식 단계적 접근을 시도 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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