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공급차질·전쟁 등 한꺼번에 닥친 복잡한 요인에 대응 실기한듯
"부양 우선→인플레 기우→물가상승 일시적→최우선 난제" 말 바뀌어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물가상승 위험성을 오판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3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행정부와 연준의 1년 간 태도를 되짚으며 인플레이션 대처에 실기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은 시중에 현금이 너무 많이 풀리는 등 이유로 화폐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지속적으로 치솟는 현상을 말한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와 연준의 오판 정황은 1년 만에 완전히 뒤바뀐 태도에서 노출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2월까지만 하더라도 경기침체 위험성을 경고하며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위축된 경기를 부양할 당연한 조치로 여겨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2월 5일 "가장 큰 위험은 너무 크게 가는 게 아니라 너무 작게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2주 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코로나19 보조금 지급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3월 1조9천억 달러(약 2천350조)의 코로나19 구호자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미국인 수백만 명에게 1천400달러(약 170만원)씩 현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에서 급격히 늘어나는 유동성을 주목하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큰 위험은 아니라고 본다"고 일축했다.
미국은 그해 5월이 되자 꿈틀거리는 물가를 조금씩 의식하기 시작했다.
옐런 장관은 5월 4일 한 포럼에서 "우리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기준금리가 조금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 때문에 주가가 내려앉자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었고 그런 문제가 있어도 연준의 해결을 믿는다"고 항변했다.
결국 옐런 장관은 6월에 물가가 예상보다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파월 의장도 같은 달 "인플레이션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높고 지속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7월 식료품, 휘발유, 주택 임차료 등의 급등 속에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8∼9월 들어 글로벌 물류 차질 때문에 상황이 악화했음에도 물가가 내려갈 것으로 봤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는 트위터를 통해 "한 달 변화는 추세가 아니다"고 장담했다.
미국의 10월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6.2% 올라 30년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연준은 11월이 되자 자산매입을 축소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을 줄이는 방식(테이퍼링)으로 물가 대응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추세를 되돌리는 게 최우선 순위"라며 공급사슬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물가상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 11일 발표된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무려 6.8% 올라 40년 만의 최대폭을 찍었다.
파월 의장은 같은달 15일 "이제 진짜 위험하다"며 2022년 3월까지 자산매입 축소를 끝낸 뒤에 기준금리 인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2월 24일이 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는 악재가 불거졌다.
주요 곡창지대를 보유한 국가들 간의 전쟁,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등으로 곡물, 천연가스, 석유의 가격이 올라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3월에 0.25%포인트, 5월에 0.5%포인트 올리는 식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섰으며 올해 두 차례 추가인상도 검토하고 있다.
WP는 수십년간 잠잠하던 물가가 갑자기 치솟아 미국 경제의 최고 난제가 된 배경에는 수개월에 걸친 오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다지 연관성이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이 갑자기 한꺼번에 들이닥친 까닭에 정책입안자들이 기습을 당했다는 얘기다.
미국 인플레이션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팬데믹, 공급망 정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계 소비패턴의 급격한 변화 등이 거론된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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