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국' 북한 성토장된 군축회의…개회 직후부터 규탄 쏟아져

입력 2022-06-02 22:30  

'의장국' 북한 성토장된 군축회의…개회 직후부터 규탄 쏟아져
한미일 공조 과시…북 우호국들, 두둔 발언 없이 의례적 덕담만
집단퇴장 등 극단적 항의는 없어…공동성명 40국 "회의참여를 동의로 해석 말라"


(제네바=연합뉴스) 김정은 특파원 = 북한이 약 11년 만에 순회 의장국을 맡아 주재한 2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 군축회의(Conference on Disarmament·CD) 본회의는 북한의 계속되는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규탄하는 성토장이 됐다.
통상 새로 순회 의장국을 맡은 국가가 주재하는 첫 본회의는 의장국이 활동 계획을 설명하고, 다른 회원국들은 의장국 수임을 축하하고 덕담을 나누는 자리다.
그러나 이날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린 본회의에서는 의장을 맡은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의 개회 발언이 끝나자마자 40여 개국의 공동 성명을 시작으로 각국에서 북한에 대한 우려와 유감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한 대사는 북한이 유엔 군축회의 순회의장국을 맡게 돼 영광이라면서 의장국 수임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으며 회원국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첫 발언자로 나선 골리 제네바 유엔 주재 호주 대사는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회원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40여 개국의 공동 성명을 대표로 낭독하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는 북한의 지속적인 핵, 미사일 개발과 최근의 잇따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7차 핵실험 준비 움직임 등 위협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이후에도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이 개별 발언을 통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국제법 위반을 규탄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를 촉구했다.
이번 회의에서 북한의 순회의장국 수임을 축하하고 지지, 협력을 약속한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정도였다. 이 역시 의례적인 수준이었고, 북한을 두둔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우려의 발언이 이어지자 한 대사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조국을 겨냥한 비판으로, 침묵을 지킬 수 없다"면서 답변권을 행사해 반박했다.
그는 "최근의 신형 무기 시험 발사는 정기적인 활동으로, 국력 강화를 위한 우리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나라도 국가정책을 비난하거나 개입할 권리는 없다. 평화는 오직 힘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한국, 미국, 일본은 차례로 발언에 나서며 공조했다.
한국은 ICBM을 포함한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사실을 거듭 지적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를 촉구했다. 미국은 외교적 해결책을 재차 강조하면서 북한에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일본은 북한에 모든 핵무기와 WMD,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폐기하라고 거듭 밝혔다.
이번 본회의는 당초 3시간가량 예정돼 있었지만, 순회의장국 북한에 대한 이 같은 싸늘한 분위기 속에 1시간10분 만에 종료됐다.
이날 북한에 대한 각국의 비판이 이어지고 북한의 반박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이번 회의는 북한의 고립과 국제사회의 냉담한 시각을 보여준 것으로, 북한도 의장이 직접 답변권을 행사하다 보니 일부 자제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한국을 비롯해 미국, EU 회원국 등 상당수 국가는 항의의 표시로 군축회의 참석자를 대사급에서 실무급으로 낮추기도 했다.
유엔 군축 회의는 1979년 설립된 세계 유일의 다자 군축 협상 포럼으로, 24주간의 회기 동안 핵 군축, 핵분열물질 생산금지, 외기권 군비경쟁 방지, 소극적 안전보장 등을 논의한다.

의장국은 65개 회원국 가운데 영문 알파벳 순서에 따라 매년 6개국이 4주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올해는 중국, 콜롬비아, 쿠바, 북한, 콩고민주공화국, 에콰도르 순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의장국을 맡게 됐다.
북한이 유엔 군축회의 순회 의장국을 맡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11년 이후 약 11년 만이다.
1996년 유엔 군축회의에 한국과 동시 가입한 북한은 2001년 8월에는 순회 의장국을 맡을 차례였으나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의장직을 포기한 바 있다.
지난 2011년에도 북한의 순회 의장국 수임을 두고 미국 등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캐나다는 항의의 뜻으로 북한이 의장국을 맡은 기간 군축회의 참여 보이콧을 선언하고 불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 회원국이 이처럼 공동으로 대응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북한의 순회 의장국 수임과 관련, 유엔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인 유엔워치는 최근 회원국에 회의 보이콧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은 3년 전 베네수엘라, 4년 전 시리아가 순회의장국을 맡자 대표부 군축담당 대사가 항의의 표시로 군축회의장을 떠나기도 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전했다.
하지만 현지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에는 회의 불참을 선언한 국가는 없다.
이날 성명 참가국들은 주요 군축 의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북한이 의장국을 수임하는 동안 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이 같은 참여가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에 대한 무언의 동의 또는 인정으로 해석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의장국 수임 초기에 공동 입장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k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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