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천명 잔류…방공호에 어린이 등 800명 은신"
마리우폴 데자뷔…화학공장 '아조트', '아조우스탈' 되나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러시아군에 80% 이상 장악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요충지인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인도적인 재앙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BBC 등이 보도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2일(현지시간) 세베로도네츠크는 "전방위에서 (러시아군의)공격을 받고 있다"며 격렬한 시가전이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탓에 주민들의 대피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주민을 대피시키려는 노력이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인구 10만명이던 세베로도네츠크에는 현재 민간인 약 1만5천명이 오도가도 못한 채 갇혀 있는 처지라고 BBC는 전했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세베로도네츠크의 경제의 근간인 '아조트' 화학공장 지하에 위치한 소련 시절의 방공호에 은신해 있는 사람은 약 800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를 떠나기를 거부한 주민들이 (폭격을 피해) 거기에 (숨어)있다"며 "많지는 않지만 어린이들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세베로도네츠크는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가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로 도시 전체를 포위한 뒤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러시아군에 의해 도시 기능이 마비된 상황이다.
도시 곳곳에서 잔여 병력 소탕을 노리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시가전까지 벌이고 있는 탓에 아조트 화학공장으로 몸을 피한 민간인들은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의 공격이 계속 이어질 경우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으로 초토화된 남부 마리우폴에 위치한 제철소 '아조우스탈'에서 벌어졌던 인도적 위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은 아조우스탈을 최후의 보루 삼아 결사항전에 나섰으나, 러시아군의 맹렬한 포위 공격을 당한 끝에 지난달 17일 러시아 측에 항복했다.
이 과정에서 제철소 지하터널로 피신한 민간인들은 물과 식량, 의약품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최소 한 달 이상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인도적 위기를 견뎌야 했다.
마리우폴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이 도시를 포위한 뒤 군인과 민간인,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으로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점령 전술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자국군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에 공포를 주입해 점령을 용이하게 하려고 마리우폴에 이어 세베로도네츠크에도 이 전술을 꺼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이 지역의 마지막 가스 공급소가 공격을 받은 후 지역 내 가스 공급이 끊기고 물과 전기의 공급도 제한적이라고 지난주 말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러시아의 공세에 맞서 최대한 오래 버텨 러시아군 보급로를 차단해 반전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양측의 공방이 워낙 치열한 탓에 시간이 갈수록 아조트 화학공장 등에 고립된 민간인들의 고충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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