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과 동물 화석서 박치기 적응한 두개골·목뼈 확인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지상에서 가장 키가 큰 동물인 기린은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따먹기 위해 목이 길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목적 외에 암컷을 놓고 벌이는 수컷 간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긴 목을 갖게 됐을 수 있다는 점이 화석을 통해 드러났다.
중국과학원과 외신 등에 따르면 과학원 산하 '척추고생물학·고인류학연구소'(IVPP)의 덩타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중국 북서부 신장의 준가르 분지에서 발굴된 기린 과(科) 동물의 초기 화석 '디스코케릭스 셰즈'(Discokeryx xiezhi)를 분석한 결과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이 화석은 약 1천700만 년 전 마이오세(중신세) 초기 지층에서 발굴됐으며, 두꺼운 두개골과 강한 목뼈(경추) 등이 포함돼 있다.
D. 셰즈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기린 속(屬) 동물과는 달리 큰뿔야생양 크기로, 두개골 위로 원반형 뿔인 골축(骨軸)을 갖추고 있다. 속명 디스코케릭스는 원반형 뿔을 의미하는데, 이런 뿔은 수컷들이 짝짓기 경쟁을 하며 싸울 때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종명 셰즈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의 중국 명칭에서 따왔다.
연구팀은 D. 셰즈의 두개골과 경추가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두개골과 경추, 경추와 경추 사이가 복잡한 관절로 연결돼 있다면서 이는 일부 포유류의 짝짓기 쟁탈전에서 볼 수 있는 강한 박치기 싸움에 적응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D. 셰즈의 관절 구조는 사향소를 비롯해 박치기 싸움을 하는 현존 동물들의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어서 가장 뛰어난 박치기 꾼일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기린 과 동물이 가진 뿔의 형태를 다른 반추동물과 비교한 결과, 뿔의 형태가 극단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였는데 이는 기린 과 동물의 암컷 구애 행동이 더 치열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D. 셰즈가 살던 마이오세 초기의 신장 지역은 남쪽에서 티베트고원이 융기하면서 수증기의 이동을 막아 다른 곳보다 건조했다면서 화석의 이빨 에나멜(법랑질)에 남은 안정 동위원소는 D. 셰즈가 숲이 아닌 초원에 살면서 계절에 맞춰 이동했다는 점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건조한 초원 환경은 동물에게는 숲보다는 덜 안정적인데 D. 셰즈가 치열한 짝짓기 싸움을 벌인 것도 이런 생존 스트레스와 연관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현재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기린 속 동물이 처음 출현한 약 700만년 전에도 동아프리카 고원 지역의 환경이 숲에서 초원으로 바뀌는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기린의 조상들이 목과 머리를 휘두르며 짝짓기 경쟁자를 공격하는 법을 개발하고, 목이 길면 길수록 상대방에게 더 강한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약 200만년에 걸쳐 진화하면서 목이 길어졌을 것으로 제시됐다.
연구팀은 목이 길어진 기린이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따먹는 데 적합했지만 생태적 지위는 솟과나 사슴과 동물보다는 취약해 종내 치열한 구애 경쟁을 촉진하고 이는 더 극단적인 형태적 진화를 가져왔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아프리카 기린은 키가 수컷은 5.5m, 암컷은 4.3m에 달한다. 이 중 목 길이만 1.8m에 이르지만 목뼈 자체는 7개로 다른 포유류와 같다.
논문 공동 저자인 미국 뉴욕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멍진 박사는 "전통적 가설은 기린의 긴 목이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먹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설명해 왔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초기 기린과 동물 중에는 목이 길지 않고 박치기 과정에서 충격을 흡수하고 타격을 가하기 위해 목이 극단적으로 두꺼워졌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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