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서 식료품 비중, 신흥국이 더 커…경제난에 외채 부담도 증가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스리랑카를 비롯한 일부 신흥국들이 경제난을 겪으며 위기 확산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신흥국이 최근의 식료품 가격 고공행진으로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3월 사상 최고치인 159.7을 기록한 뒤 4월과 5월에도 158.3, 157.4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5월 지수는 전달 대비 0.9포인트(0.6%) 내려갔지만, 전년 동기보다는 29.3포인트(22.9%)나 오른 것이다.
게다가 식료품 가격 상승은 가뜩이나 선진국보다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신흥국 물가에 더 큰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산정 바스켓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신흥국이 선진국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를 비롯해 멕시코·인도네시아·인도·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의 신흥국 CPI 바스켓에서 식료품의 비중은 30%를 웃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10∼15%, 미국은 8%로 상대적으로 낮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CPI에서 식료품 비중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41.1%, 인도가 39.1%, 멕시코가 27.6% 정도다.
게다가 식료품 가격 상승은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에도 위협요인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CPI 바스켓에서 식료품의 비중 및 통화가치 사이의 관계를 모델링한 결과로, 중국을 비롯해 대만·멕시코·콜롬비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의 화폐가 식료품 가격 상승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블룸버그의 설명이다.
게다가 통화가치가 약해지면 수입 물가가 올라가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크다.
2010년대 초 '아랍의 봄' 사태처럼 식료품 가격 상승은 사회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한정된 재원으로 식료품 가격을 잡거나 외채를 갚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스리랑카 정부는 총 510억달러(약 65조2천억원)에 이르는 대외 부채에 대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 '국가 부도' 상황을 맞았다. 스리랑카는 인프라 사업 예산 등을 최대한 줄여 복지 등 구호프로그램에 쓰겠다고 밝힌 상태다.
4월 스리랑카의 CPI는 전년 동기보다 33.8%나 치솟았으며,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향후 몇 달간 물가 상승률이 40%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당분간 경제난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스리랑카의 경제위기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고 다른 신흥국에서 유사한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연이어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최소 15개 신흥국에서 달러 표시 국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10%포인트를 넘겨 부실채권 수준에 이른 상태다.
2019년부터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레바논이 134.52%포인트로 가장 높았고 벨라루스(61.14%포인트), 스리랑카(37.59%포인트), 우크라이나(37.49%)가 뒤를 이었다.
이 외에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중미 엘살바도르가 26.23%포인트, 4월 기준 물가상승률이 연 58%에 달한 아르헨티나가 17.06%포인트, 경제위기설이 제기되는 파키스탄이 14.70%포인트였다. 15개국 중 4곳은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스리랑카는 (경제위기를 보여주는) 전조"라고 봤고, 미 외교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스리랑카 사례는 향후 예상되는 많은 디폴트 사례 중 첫 번째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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