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8개국 순방에 미·호주 '화들짝'…고강도 견제
중국 '제3도련선' 구축 시도에 미·호주 견제 치열할듯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2∼3일 파푸아뉴기니 방문을 끝으로 마무리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남태평양 도서국 순방을 계기로 미·중 전략경쟁 전선이 남태평양으로까지 확산한 양상이다.
지난달 25일부터 3일까지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등 순으로 순방하면서 왕 부장은 각국과 보건, 농·어업, 인프라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왕 부장은 3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순방기간 태평양 도서국들과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기후변화 대응·방역·방재·녹색발전·의료·보건·농업·무역·관광·지방 등 총 15개 영역에 걸친 52개 항목의 협력 합의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5월20∼24일) 직후 이뤄진 이번 순방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선 중국의 '카운터펀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창설,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정상회의 등으로 미국이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자 중국은 남태평양 섬나라들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포위망에 돌파구를 만들려는 포석으로 읽혔다.
특히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만과 관계가 깊었던 남태평양 도서국에 최근 수년간 '차이나 머니'를 쏟으며 공을 들였고, 지난 4월 솔로몬제도와는 무장 경찰 파견 및 선박 기항 등을 가능케 하는 안보협력 협정을 체결한 터였다.
특히 중국이 책정한 해상 안보라인인 '도련선' 중 알래스카와 뉴질랜드를 잇는 제3도련선에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들 섬나라는 미국의 군사 거점인 하와이와 괌, 미국의 동맹인 호주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다. 따라서 왕 부장의 이번 순방에 대해 미국과 호주 등은 군사 거점 확보 시도일 수 있다는 점을 강도 높게 견제했다.
미국과 뉴질랜드는 지난달 31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솔로몬제도 안보 협정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고, 호주는 왕 부장 순방국에 포함된 피지와 사모아에 외교장관을 급파하며 관계 강화를 추진했다.
이런 견제의 영향 때문인지 왕 부장의 순방 계기에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한 태평양 섬나라 10개국과의 '포괄적 개발 비전(이하 비전)' 채택은 불발됐다.
안보와 경제 협력을 망라한 비전에 대해 미크로네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가 '미·중 패권 경쟁에 말려들 수 있다'며 이견을 보인 탓이었다. 또 피지는 왕 부장의 남태평양 순방 기간에 IPEF 참여를 선언함으로써 중국의 구애에 찬물을 끼얹었다.
왕이 부장은 서방이 중국과 도서국 간 안보 협력을 집중 견제하고, 거기에 도서국들도 부담을 느끼는 상황을 의식한듯 이번 방문 기간 안보 협력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3일 파푸아뉴기니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중국은 파푸아뉴기니에 어떤 정치적 조건도 붙이지 않은 채 기술 원조를 계속하고 경제·사회 발전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순방기간 중국이 수교한 10개 태평양 도서국들과 합의한 사항들은 "모두 도서국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에 새로운 조력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왕 부장 순방을 계기로 남태평양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도 기대한 성과를 100% 거두진 못했지만 각국과의 양자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전략적 거점 확보를 위한 '터닦기'는 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안보협정을 체결한 솔로몬제도, 활주로 정비 프로젝트를 지원한 키리바시 등과의 관계를 앞으로도 지속 발전시키며 거점 확보를 노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여기에 맞서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도 주변 섬나라들을 향한 외교와 물량 공세를 통해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가까운 곳에서 대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커진 호주가 작년에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를 출범시키며 미국으로부터 약속받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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