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일본인 납북 피해 모독 행사도 허용할건가?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지난달 21∼22일 극우단체 일본제일당 주최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모독 전시회가 공공시설에서 개최된 것으로 드러냈다.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묘사해 논란이 된 이 전시회가 열린 장소는 도쿄도 구니다치시에 있는 시민예술홀이다.
기초자치단체인 구니다치시가 운영하는 이 공공시설은 지난 4월 2~5일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등이 전시된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 2022'(이하 표현의 부자유전)가 열린 곳이다.
일본 시민단체는 당초 작년 6월 도쿄 내 민간시설에서 이 전시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극우단체의 집요한 방해에 시달린 민간시설 측이 장소 대여에 난색을 보이자, 올해 어렵사리 이 공공시설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 등의 전시를 방해하던 극우단체가 이번엔 표현의 부자유전이 열린 전시시설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조롱하고 모독하는 전시회를 개최한 것이다.
일본제일당이 유튜브에 게재한 동영상을 보면 전시장에는 평화의 소녀상과 유사한 모양의 풍선 인형들이 전시됐다. 이 인형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성매매를 대가로 돈을 받은 것처럼 묘사했다. 전시회 관계자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놀리는 전시회가 공공시설에서 개최된 것을 놓고 일본 일각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구니다치시 관계자는 공공시설에서 이런 전시회가 열릴 수 있게 허가한 이유를 묻자 "전시 내용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파악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전시물을 전시하기 위해 시설을 사용한다는 이용 목적에 따라 대여한다"고 3일 답변했다.
전시 내용을 기준으로 공공시설 이용에 관한 허가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가 주도한 표현의 부자유전 개최를 허용한 구니다치시 입장에선 극우단체의 전시회를 불허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지방자치법'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주민의 공공시설 이용을 거부해서는 안 되고, 주민의 공공시설 이용에 대해 부당한 차별적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조롱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공시설 이용을 제한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에 해당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를 조롱하는 전시회도 일본 공공시설에서 개최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를 모독하는 전시회는 어떨까?
이런 전시회가 개최될 수 없다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사도 공공시설에서 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역대 일본 내각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이 담긴 '고노 담화'(1993년)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취재보조: 무라타 사키코 통신원)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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