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천500년 전 동남아서 쌀농사 시작하며 가축화…진귀한 새로 숭배되다 식자재 전락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세계적으로 약 230억 마리가 사육되는 닭은 인류의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식자재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선사 인류가 야생 닭을 가축화하면서 처음부터 잡아먹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엑시터대학 등에 따르면 독일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대학'의 요리스 페터스 교수 등이 참여한 국제연구팀은 닭의 가축화 역사를 재탐구해 밝혀낸 결과를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Antiquity)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세계 89개국 600여개 유적에서 발굴된 닭 관련 유물을 토대로 야생 '적색야계'(Gallus gallus)가 가축화해 닭(G. g. domesticus)이 된 과정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적색야계가 약 3천500년 전 아시아 지역에서 건답(乾畓) 쌀농사가 시작되면서 정글의 나무에서 내려와 인간 가까이 서식하는 과정에서 가축화돼 유럽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제시했다.
또 초기에는 닭이 진귀한 새로만 취급됐으며 가축화되고 수백 년 뒤에야 닭이 낳은 알과 고기를 먹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결과는 닭이 1만년 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인도 등지에서 가축화돼 약 7천년 전 유럽 지역에도 전수됐다는 기존 가설과는 시기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논문 공동 저자인 옥스퍼드대학의 그레거 라슨 교수는 "닭의 가축화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재평가는 우선 가축화의 시기와 장소 등이 얼마나 잘못 알려져 있는지를 보여준다"면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건답 쌀농사 도입이 닭의 가축화와 확산의 촉매로 작용했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닭의 가축화가 기원전 1500년께 동남아시아 반도에서 진행됐으며, 아시아에 먼저 퍼진 뒤 초기 그리스인과 에트루리아인, 페니키아인 해상 무역상을 통해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확산한 것으로 분석했다.
방사성탄소 연대추정법을 활용해 확인한 결과, 가축화된 닭의 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태국 중부 '반 논 와트'에서 나왔으며 기원전 1650∼12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유라시아 서부와 아프리카 북서부 등지에서 발굴된 초기 닭 뼈들은 기원전 800년 이후 것으로 밝혀졌으며, 지중해를 거쳐 유럽 북부지역까지 확산하는데 1천 년 가까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철기시대 유럽에서는 닭을 숭배해 음식 재료로 간주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초기 닭이 도살 흔적 없이 매장된 무덤이 발견되고, 인간의 성별에 맞춰 수탉과 암탉이 부장 동물로 무덤에 함께 묻힌 것이 근거가 됐다.
닭고기와 알을 식자재로 인식하고 먹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 시대부터였으며, 영국에서는 3세기 이후에야 도시와 군사시설을 중심으로 닭고기를 먹은 흔적이 나타났다.
논문 공동 저자인 엑시터대학의 나오미 사익스 교수는 "닭고기 소비는 너무 일반화돼 먹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확인한 고고학적 증거는 닭과 인간의 관계가 훨씬 더 복잡했으며 수 세기에 걸쳐 찬미되고 숭배됐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페터스 교수는 "적응력이 뛰어난데다 곡물을 먹어 해상로가 가축화된 닭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로 퍼져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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