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29년전 오늘 신경영 선언…네덜란드-독일-프랑스 방문 예정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협력 강화…'전기차 배터리' 삼성SDI 최윤호 사장 동행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부친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독일에서 '신경영 선언'(1993년 6월 7일)을 한지 꼭 29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 지난해 12월 중동 방문 이후 6개월 만의 해외 출장으로, 이 부회장은 반도체 장비·전기차용 배터리·5세대(5G) 이동통신 등에 특화된 전략적 파트너들을 만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오전 11시 45분께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전세기편을 이용해 유럽으로 출국했다. 이번 출장에서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 등 3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구체적인 출장 일정과 인수합병(M&A) 계획, 취업제한 규정 위반 논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따로 답하지 않은 채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만 언급했다.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을 떠난 이날은 이건희 회장이 29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한 날이다.
당시 이 회장은 전 세계 임직원들을 불러 모아 "극단적으로 말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일갈하며 대대적인 혁신을 요구했으며, 당시 회의는 향후 삼성이 질적 성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게 한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의 이번 유럽 출장 기간은 이날부터 18일까지 12일간이다.
행선지로는 네덜란드만 공개됐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인접 국가도 함께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호 삼성SDI[006400] 사장도 이 부회장과 같은 비행기를 탔지만, 이번 유럽 출장 일정 전체를 함께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본사를 찾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급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ASML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글로벌 업체다.
연간 생산 물량이 제한적인 EUV 노광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와 2위 삼성전자 간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EUV 장비 확보에 직접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에도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네덜란드 방문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회동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3월 뤼터 총리와의 통화에서 반도체 분야의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독일과 프랑스를 방문하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간 '버라이즌', '디시 네트워크' 등 북미 지역의 거물급 이동통신사로부터 대규모 5G 통신장비 수주를 이끌었던 이 부회장이 유럽 지역에서도 현지 이동통신사와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올해 초 삼성전자는 유럽 1위 이동통신사 '보다폰'과 협력해 유럽에서 첫 5G 장비를 개통했고, 이를 계기로 유럽 네트워크 장비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유럽 출장에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SDI 최윤호 사장이 동행하는 점으로 비춰볼 때 이 부회장 주도로 유럽 완성차 업체들과 삼성SDI 간의 협력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독일에는 폭스바겐과 다임러, BMW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프랑스에는 완성차 회사 르노가 있다.
삼성SDI가 최근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미국 인디애나주에 25억달러(약 3조1천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유럽 지역에서도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 강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간 삼성이 예고한 대형 인수합병(M&A)이 이번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을 계기로 더욱 구체화하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방문하는 네덜란드에는 그동안 삼성의 유력 M&A 대상 후보로 꼽혀온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가 있고, 독일에는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이 있다.
이 부회장의 이번 해외 출장은 지난해 12월 중동 출장 이후 6개월 만이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된 이 부회장은 같은 해 11월에 11일간 미국 출장을, 12월에 3박 4일간 아랍에미리트(UAE) 출장을 각각 다녀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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