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 제재로 중단된 '이로시타' 일방적 가동 준비…기기손상 우려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가 이어지면서 러시아 우주선에 실린 독일 망원경의 가동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이 제재 조치의 하나로 러시아 우주선에 실린 자국의 X선 우주망원경 가동을 중단하고, 러시아는 인류를 위한 연구를 중단시킬 권리가 없다며 재가동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 과학기술 전문 매체 '아르스 테크니카'(ars technica)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사장은 최근 러시아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독일 망원경이 러시아 망원경과 짝을 이뤄 가동될 수 있도록 복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 망원경들은 지난 2019년 7월 프로톤 로켓에 실려 발사된 러시아 우주선 '스펙트럼-뢴트겐-감마'(Spektr-RG)에 탑재돼 지구 150만㎞ 상공을 돌고 있다.
첨단 X선 우주천문대 역할을 하는 이 우주선의 미션은 옛 소련 시절에 처음 구상됐다가 연방체제가 붕괴하면서 로스코스모스가 이어받아 독일우주국(DSR)과 합작으로 진행돼 왔다.
로스코스모스가 우주선과 ART-XC 망원경을 제작하고, 독일 '막스 플랑크 외계 물리학 연구소'가 '이로시타'(eROSITA) 망원경을 만들어 참여했다.
두 망원경 모두 X선 파장으로 초대질량 블랙홀과 은하단을 찾아내는 임무를 맡아 발사 첫해에 X선 광원 100만 개를 담아낸 지도를 내놓았으며, 서로 공조하며 7년에 걸쳐 활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지면서 독일 측이 제재로 이로시타의 가동을 중단하고 '안전모드'로 진입시키면서 전체적인 관측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로시타는 모두 8차례로 계획된 전천(全天)탐사 중 절반만 완료한 상태다.
로고진 사장은 "망원경 가동 중단을 결정한 사람들의 파시스트적 견해는 적에 가깝기 때문에 인류를 위한 연구를 중단시킬 도덕적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며 "로스코스모스는 곧 관련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독일 측은 러시아가 이로시타를 운영해온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협조 없이 일방적으로 망원경을 가동하면 기기가 손상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로고진 사장이 우주 분야에서 강경책으로 일관해 서방과의 우주 협력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을 해왔다.
로스코스모스는 영국 정부가 주주로 참여한 위성통신 기업 '원웹'의 위성 발사를 거부했으며 우주 협력의 상징이 돼온 국제우주정거장(ISS) 운영에서도 불협화음을 노출해왔다.
로스코스모스가 발사 로켓과 하강모듈 등을 제공하고 유럽우주국(ESA)이 로버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만들어 화성 생명체 탐사에 나서려던 '엑소 마즈'(ExoMars) 합작 미션도 궤도를 이탈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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