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시험 통과 못 하면 비행기 못타고 환불도 안돼"
아프리칸스어 사용자 13%에 불과…대다수는 '압제의 언어'로 인식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아일랜드 저비용항공사 라이언에어가 위조여권을 적발하겠다는 이유로 영국행 비행기를 예약한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 여행자들에게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때나 쓰던 '아프리칸스어' 시험을 보게 해 논란이 일고 있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라이언에어는 현재 남아공 여권 소지자들에게 설문지를 제시하고 아프리칸스어로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설문지에는 남아공 대통령의 이름과 국가 전화번호 코드, 국가 동물·꽃·색, 국가 공통언어 등을 묻는 항목이 적혀 있다고 NYT는 전했다.
항공사는 "설문지를 작성하지 못한 사람은 비행기를 탈 수 없고, 비행기표를 환불받을 수도 없다"고 안내자료에서 명시했다.
남아공에서 리더십·경영 트레이너로 일하는 디네시 조셉은 자신이 영어로 답을 쓰려고 하자 항공사 측이 "아프리칸스어가 당신의 언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인도계 혈통으로 남아공에서 영어를 써 온 조셉은 항공사의 태도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라이언에어가 이런 '시험'을 보는 이유는 남아공 위조 여권 사용자를 적발하기 위해서다.
아프리칸스어를 안다면 남아공 국적자가 맞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인데, 온라인상에서는 아프리칸스어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인종차별적 처사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아프리칸스어는 과거 네덜란드계 이주민이 식민지인 남아공에서 본국의 언어를 독자적으로 변형시켜 사용하던 언어로, 한때는 사용 인구가 많았으나 현재는 현지인의 10명 중 1명 정도만이 쓰고 있다.
특히 이 언어는 과거 소수 백인정권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펼칠 때 공용어로 편입했기에 많은 남아공인에 '압제자의 언어'로 인식된다.
남아공에서는 현재 10개 이상의 언어가 쓰이고 있는데, 줄루어 사용 인구가 23%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코사어(16%), 아프리칸스어(13%) 등 순이다.
남아공 정부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내무부는 성명을 통해 "정부는 항공사들이 여행자를 선별하고 남아공 여권을 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 항공사의 이같은 결정은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withwi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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