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범죄 인지한 뒤 부실·늑장 수사로 피해 늘었다" 주장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들이 연방수사국(FBI)을 상대로 모두 10억 달러(약 1조2천575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미국 여자 체조의 에이스인 시몬 바일스와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맥카일라 마로니 등 피해자 90여 명이 FBI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FBI가 가해자인 래리 나사르(58)의 범죄를 인지한 뒤에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가 계속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6년부터 대표팀 주치의로 일한 나사르는 여성 선수에게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FBI가 나사르의 범죄 사실을 인지하고 첫 조사에 나선 것은 2015년 7월이었지만, 수사가 미뤄지면서 실제 기소는 2016년 11월에야 이뤄졌다.
특히 수사 초기인 2015년 피해자 마로니의 진술을 청취한 FBI 요원은 나사르가 기소된 이후인 2017년까지도 진술서를 작성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수사가 미뤄지는 상황에서 나사르는 꾸준하게 성범죄를 이어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나사르는 지난 2018년 연방 범죄와 미시간주법 위반으로 각각 60년형과 최대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FBI도 부실 수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에 열린 미국 연방 상원의 청문회에서 마로니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FBI 요원에게 진술하는 것 자체로도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지만, FBI가 자신의 진술을 무시한 것이 더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FBI가 보고서를 책상 서랍에 묻을 것이었다면, 성추행 조사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며 규탄하기도 했다.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중에서 바일스와 마로니, 앨리 래이즈먼, 매기 니컬스 등 4명의 전·현직 체조선수들은 각각 5천만 달러(약 628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집단 소송의 원고는 체조 선수들이 중심이지만, 일부는 나사르에게 진료를 받은 환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FBI 요원 모두가 교훈을 얻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최근 미국 법무부는 부실 수사의 당사자로 지목된 FBI 요원에 대한 기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을 공개했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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