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신 우리편에 서라…바이든, 중남미에 '각별한 구애'

입력 2022-06-10 18:20   수정 2022-06-10 19:41

중국 대신 우리편에 서라…바이든, 중남미에 '각별한 구애'
중국 일대일로 사업 겨냥해 대규모 투자·지원 약속
중국 백신외교, '핑크타이드'로 중남미서 미국 입지 좁아져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외 정책 초점이 '중국 견제'로 집중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8∼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모인 중남미권 정상을 향해 '당근'을 내밀며 대중국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달 한일 순방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쿼드 정상회의 개최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발을 묶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한 데 이어 앞마당 격인 중남미에서도 '대중국 포위망'을 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8일 경제 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APEP)를 통한 경제협력 심화 구상을 제시한 데 이어 9일엔 기후위기와 식량 안보 문제에 방점을 두고 환경친화적 경제 파트너십 구축을 선언했다.
구체적으로는 향후 5년간 미주개발은행(IDB) 등 4개 개발은행이 500억 달러(약 63조원) 규모의 기후금융을 제공, 미주 대륙의 기후변화 달성 목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브라질·콜롬비아·페루 삼림 보호를 위해 1천200만 달러(약 152억원)를 투입하기로 약속했다.
아울러 미주 기업인 회의 연설에선 미국 기업에 중남미 투자 확대를 호소하면서, 중남미가 '빚의 덫'에 갇힌 발전이 아닌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도록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손잡고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벌인 일부 국가가 빚더미에 오른 사실을 거론하면서 중국의 중남미 진출을 견제했다. 이에 더해 중미 출신 노동자에 대한 고용 지원 프로그램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백악관도 박자를 맞췄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일 미주정상회의에서 성과에 대해 "중국의 뽑아내기식 투자 사업보다는 지역 주민의 실질적인 삶과 생계에 더 큰 영향을 불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처럼 중남미에 각별하게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최근 수년 사이 부쩍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미국이 중남미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생겨난 반미정서와, 1990~2000년대 중남미에 좌파 정권이 잇따라 들어서는 '핑크타이드'를 틈타 이 지역에 영향력을 넓혀왔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가 최근 3년간 줄줄이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제2의 핑크타이드'가 출렁이면서 미국엔 불리한 환경이 됐다.
브라질과 칠레, 페루 등에선 이미 최대 교역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멕시코를 뺀 나머지 중남미 지역의 대중 교역 규모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부터 이미 대미 교역을 넘었고 작년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중국은 팬데믹 동안 자국산 백신을 빈곤국이 많은 중남미에 무상 혹은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백신외교'로 이 지역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 '잠재적 적국'인 중국이 자국과 국경을 맞댄 중남미 지역을 주도하는 건 여간 거슬리는 상황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싱크탱크 외교협회(CFR)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부통령 시절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맞서 미국이 주도하는 '더 나은 세계재건'(B3W) 구상을 추진, 중남미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과 중남미의 관계가 훼손됐고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 문제와 관련해선 충분한 노력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정부의 '구애'에도 중남미권에선 즉각적인 호응이 나오지 않고 있다.
반미 3개국인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정상을 독재자라는 이유로 이번 미주정상회의에 초청하지 않자 멕시코 대통령이 이에 반발해 불참했다.


존 브리세뇨 벨리즈 총리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9일 바이든 대통령 면전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 정상을 초청하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워싱턴포스트(WP)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적대국이란 이유로 이들 국가와 어울리길 거부해 중남미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를 보이콧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이 제시한 중남미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지지하면서도 미국에 수십 년간 이어진 쿠바와의 갈등을 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처럼 시큰둥한 반응이 나온 것은 중남미 국가들이 원하는 관세인하나 시장접근 확대 등 기존에 맺은 무역협정을 넘어서는 수준의 내용이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이 여러 제안을 내놨지만 중국과 관계를 저울대에 올려놓을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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