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소프트 파워 키우겠다'는 태국, 한국을 바라보다

입력 2022-06-11 07:07   수정 2022-06-11 15:55

[특파원시선] '소프트 파워 키우겠다'는 태국, 한국을 바라보다
코로나19 '집콕' 2년간 각종 OTT서 소프트 파워 영향력 더 커져
총리·언론 "한국 성공적…비결 뭐냐" 외교단도 "훌륭한 외교자산" 칭찬 릴레이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소프트 파워 강국' 한국을 배우자"
태국 정부가 최근 '소프트 파워' 키우기에 열을 올리면서 현지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욱 커지고 있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지식 등을 기반으로 한 국가 영향력을 일컫는다.
태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K-팝 그룹 블랙핑크의 태국 출신 멤버 리사의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게 결정적이었다.



리사는 고향인 부리람주의 파놈 룽 역사공원 내 석성(石城)과 태국 전통 세공품을 등장시켰다.
이른바 '태국다움'(Thainess)에 많은 태국 국민이 열광했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국가 소프트 파워를 촉진할 준비가 돼 있다며 '흥분'했다.
금세 가라앉는 듯했던 분위기는 지난 4월 '밀리'로 통하는 10대 여성 래퍼 다누파 카나티라꾼으로 다시 달아올랐다.



미국의 한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한 밀리는 순서를 마치면서 무대 위에 놓인 '망고 찹쌀밥'을 먹음직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망고 찹쌀밥은 썰어 놓은 망고와 찰밥을 담은 태국 전통 디저트다.
관련 영상이 SNS에서 확산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정부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게 하겠다며 나섰다.
태국 정부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라고 마음먹은 듯, 태국의 5F를 활용해 소프트 파워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 찬 포부도 밝혔다.
5F는 음식(Food), 영화(Films), 패션(Fashion), 무에타이(Fighting) 그리고 축제(Festival)를 일컫는다.
그러면서 한국을 '롤 모델'로 삼았다.
태국은 2006년 드라마 대장금을 계기로 동남아 한류 열풍을 주도한 국가다.
2년여의 코로나19 사태 기간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많아지면서 태국에서 한국 드라마 등의 위력은 더 거세졌다.



태국 넷플릭스 톱10 시리즈에는 전 세계적 히트작 '오징어 게임' 등 인기 한국 드라마나 시리즈가 절반 이상인 게 당연시되다시피 했다.
BTS와 블랙핑크 등 세계적인 K-팝 그룹의 선전도 힘을 보탰다.
소프트 파워 증진을 외친 태국 정부가 한국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 영문 일간지 방콕포스트는 1면에 홍지희 한태교류센터 대표 인터뷰를 싣고 왜 한국 소프트 파워가 강한지에 이야기를 나눴다.
문승현 주태국 한국 대사와 조재일 한국문화원장도 더 바빠졌다.



문 대사가 4월 중순 신임 인사차 예방했을 때 쁘라윳 총리는 한국이 소프트 파워를 전 세계적으로 잘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양국 간 더 밀접한 협력도 강조했다.
태국 주재 외교단도 만날 때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얼마나 훌륭한 외교적 자산이냐"라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다고 문 대사는 전했다.
태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 띄우기에 나선 데에는 내년 초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을 가진 거라는 일각의 시선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타격을 입어 집권 세력 인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리사나 밀리를 소프트 파워로 '포장'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소프트 파워 진흥은 한국처럼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아야 하는데, 태국은 반대로 지원은 없고 간섭만 한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를 외칠수록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태국 내 한국 기업이나 교민들에게도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지난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한 '2021 한류 파급효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한류 대중화가 이뤄진 국가는 태국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인도네시아, 중국 등 6개국이었다.
한류심리지수가 크게 높아진 국가 역시 태국을 비롯해 인도·베트남·아랍에미리트 등 4개국이었다.
태국은 베트남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한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국가임이 수치로도 입증된 셈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방콕 지사에 따르면 지난해 태국에 수출된 소스류는 약 800만 달러(약 100억원)로 전년 대비 15.7% 증가했다.
떡볶이와 고추장 수출액은 약 300만 달러(약 38억원)와 180만 달러(약 23억원)로 각각 35.5%와 8.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드라마와 K-팝 등을 통해 한국 이미지가 상승하면서 유럽산이 주를 이루던 반려동물 사료 시장에서 한국산 프리미엄 사료 수출액도 작년 1천880만 달러로 한 해 전과 비교해 5.8% 증가했다고 한다.
이주용 aT 방콕 지사장은 "최근 2년여의 코로나19 기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방영된 인기 한국 드라마에서 우리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한국 식품의 수출 확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약 20년간 태국에 머물며 문화교류 활동을 해온 이유현 KTCC 미디어 대표는 "한국 소프트 파워 강세로 비단 소비재가 아니더라도 한국 제품의 이미지가 동반 상승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각종 OTT를 통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익숙해진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프라인 활동까지 더해진다면 기존 한류 열풍을 뛰어넘는 태국 내 한국 문화 흥행의 '빅뱅'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다만 태국 소비자들의 눈이 높은 만큼, 고품질 소프트 파워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마침 이달 중순부터 내달까지 몇몇 한국 가수와 배우가 태국을 찾아 팬들을 만날 예정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2006년 한류의 첫 물결 이후 15년여간 태국 사회에서 존재감을 높여온 한국의 소프트 파워. 태국의 롤 모델로 그 위상이 더 공고해질지 주목해볼 때다.
sou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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