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북단 중세 유해 이빨서 페스트균 DNA 검출 분석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14세기 중반에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유럽 인구를 반토막 낸 중세 흑사병이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북부에서 시작됐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흑사병으로 숨진 중세 유해에서 나온 고대 페스트균에 대한 게놈 분석을 토대로 한 것으로, 중국 기원설을 비롯한 다양한 다른 가설에 종지부를 찍을지 주목된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와 외신 등에 따르면 영국 스털링대학 역사학자 필 슬라빈 박사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페스트균 유전자 분석을 토대로 '2차 대역병'으로도 불리는 중세 흑사병의 발원지를 키르기스스탄 이식쿨(Issyk Kul) 호수 인근으로 지목한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톈산산맥 기슭의 작은 언덕에 위치한 추 계곡에서 약 140년 전 이뤄진 유적 발굴 작업에서 시리아어로 '1338년 전염병으로 숨졌다'는 내용의 묘비들이 잇따라 나와 중세 흑사병과의 연관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중세 흑사병은 이보다 9년 뒤인 1347년 흑해에서 상품을 싣고 지중해에 도착한 무역선을 통해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으며 최대 60%까지 사망자를 낸 최악의 전염병으로 기록돼 있다.
연구팀은 '전염병 묘비'를 가진 여성 3명의 유해에서 나온 이빨에서 흑사병을 일으키는 페스트균의 DNA를 검출해 게놈 분석을 진행했다.
중세 흑사병은 페스트균 변이종이 폭증하는 이른바 '빅뱅'을 통해 무섭게 번져나간 것으로 연구돼왔는데, 이들 유해에서 확인된 페스트균은 이런 폭발적 변이가 발생하기 전 형태인 것으로 분석됐다.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에 흑사병을 일으킨 변이종은 물론 현존하는 모든 페스트균 종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제1 저자인 튀빙겐대학의 마리아 스피로우는 "이 고대 페스트균은 대규모 다양화의 정확히 중심점에 위치해 있다"면서 "우리는 중세 흑사병 페스트균의 근원종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1338년이라는) 정확한 시점까지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으로 흑사병이 확산할 때 무역이 결정적 요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고있다"면서 "1338년에서 1346년 사이에 페스트균이 중앙아시아에서 흑해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확산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페스트균이 세계 도처의 들쥐를 숙주로 삼고있는 만큼 1338∼1339년 옛 실크로드 무역로 인근 마을을 초토화한 고대 페스트균도 주변의 들쥐에서 옮겨온 것으로 분석했다.
논문 수석저자이자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장인 요하네스 크라우제는 "이 페스트균 종과 가장 비슷한 현대 변이종은 톈산산맥 주변의 숙주동물에서 발견되고 있다"면서 "이는 중앙아시아가 중세 흑사병의 기원이라는 점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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