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저금리 정책에 엔화 가치 폭락…아베 노선에 의문 제기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자민당 '상왕'으로 여겨지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내년 4월 임기 만료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 인선을 겨냥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끈다.
16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다음 (일본은행) 총재도 제대로 거시경제 분석이 가능한 분이 하면 좋겠다"고 전날 말했다.
그는 젊은 의원들로 구성된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추진하는 의원연맹'의 모임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아베 전 총리는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 적극적 재정으로 높은 경제 성장을 실현했다고 강조하고서 "금융정책을 일본은행이 제대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견해를 함께 표명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제2차 아베 내각 초기인 2013년 3월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한 구로다는 대규모 금융완화로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아베노믹스)을 충실하게 뒷받침했다.
퇴임 후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으로 취임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베가 일본은행 총재 인사에 관해 언급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유산인 아베노믹스가 이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베의 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아베 정권 계승을 표방했다.
이어 취임한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워 아베노믹스를 탈피할지 주목받았으나 최근에는 별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은행이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에 관해 "일본은행이라는 것은 정부의 자회사다. (국채가 만기가 되면) 변제하지 않고 다시 빌리면 된다. 몇 번이든 다시 빌려도 상관없다"고 지난달 9일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재정 전문가들은 아베의 발언이 일본은행의 독립성이나 재정 규율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일본 정부가 일본은행에 55%를 출자했으나 의결권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경영을 지배하는 법인이라고 할 수 없으며, 회사법으로 말하면 자회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아베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자회사인 것은 틀림없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은행 정관은 총재 임명 절차에 관해 '중의원과 참의원의 동의를 얻어 내각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각 구성원이 아닌 아베 전 총리가 일본은행 총재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최근 엔화 가치 폭락과 맞물려 주목된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중앙은행이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가운데 일본은행은 나홀로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며 대규모 금융완화를 고수하는 것이 엔저를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아베노믹스와 이론적 맥을 같이하는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전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라고 간접적으로 촉구한 셈이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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