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보도…"중국 의존 줄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바이든, 빈살만 회유하려 취임 초부터 '밀당' 되풀이"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중국 견제용일 수 있다고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미국 고위 관리를 인용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상황을 모면하려고 사우디에 손을 벌린 것 아니냐는 세간의 관측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사우디는 다음 달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때 기간시설, 청정에너지, 우주기술, 경제투자, 사이버 등을 둘러싼 광범위한 제휴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폴리티코는 이 같은 제휴가 중국 견제 전략이라는 점을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중동 전역에 여러 부문에 걸친 생산 거점을 구축해 중동을 넘어 세계가 중국 공급사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도록 하는 게 이 전략의 실체라고 전했다.
미국의 노하우와 사우디의 투자가 맞물리는 이번 계획이 시행되면 사우디도 자국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난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이것이 바로 미국과 사우디가 미래를 함께 장악할 방식"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사우디 방문은 최근 수년간 극도로 악화한 양국 관계 때문에 국제사회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잔혹하게 암살한 배후로 의심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예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지탄받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가 되기 전부터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우디 왕실을 향한 비판적 태도를 여과 없이 보였다.
사우디를 '글로벌 왕따'로 만들겠다는 말까지 꺼낸 바이든이 집권하자, 무함마드 왕세자도 더는 미국이 안중에 없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달러 패권과 석유 패권을 나눠 갖고 세계를 쥐락펴락한 미국과 사우디의 오랜 우호관계가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 때문에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 대해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자국의 급격한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사우디에 원유증산을 설득하려 다급하게 손을 내민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었다.
폴리티코도 "원유와 당면한 미국의 경제 문제(인플레이션)가 이번 방문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폴리티코는 바이든 행정부가 글로벌 주도권을 염두에 두고 이미 출범 때부터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1월 취임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자신의 중동 보좌관인 브레트 맥거크를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특사로 보냈다는 것이다.
맥거크 보좌관은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바이든 행정부가 장차 쏟아낼 대(對)사우디 정책의 내용을 미리 알렸다.
미국 정보기관이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지목하고 범행 관련자들을 제재한다는 계획, 예멘 내전에 사우디가 개입했다는 이유로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계획 등이 거기에 포함됐다.
맥거크 보좌관은 과거 80년간 이어져 온 양국관계의 토대를 통해 새로 80년간 이어질 전략적 제휴관계를 열어젖히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을 전달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맥거프에게 카슈끄지 살해를 명령하지 않았지만 재발을 막을 것이며, 미래를 위해 주체적으로 사우디를 변혁해가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 냉각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무함마드 왕세자가 작년 9월 면담 때 카슈끄지를 사건을 두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었다.
올해 2월에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유가 안정을 협의하려는 미국 대표단에 퇴짜를 놓았고, 4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유엔 총회 결의 때 사우디가 기권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사우디는 미국 정부의 다른 요청은 대체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예멘 전쟁을 끝내려 노력하고 카타르에 대한 경제봉쇄를 해제했으며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고 이란과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양국은 올해 4월부터 이어진 물밑 행보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을 조율함으로써 경색완화의 실마리를 잡았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나 양국 파트너십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어 무함마드 왕세자의 동생인 칼리드 빈살만 사우디 국방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견해를 재확인했다.
jangj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