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고도의 자치' 약속 깨져…반정부시위가 '게임 체인저'
"1997년보다 더 많은 사람 떠나"
[※ 편집자 주 = 홍콩이 오는 7월 1일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일을 맞이합니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으면서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의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홍콩의 지난 25년과 앞으로의 25년에 대한 전망을 세 편의 기사로 정리합니다.]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은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였다. 홍콩은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점령당했지만 중국 영토로 남아 있었다."
오는 9월부터 홍콩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부할 새로운 시사교양 과목 '공민사회발전' 교과서 중 하나에 수록된 내용이다.
현재 홍콩 교육 당국이 검정 중인 '공민사회발전' 교과서 4종은 모두 "중국 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이양하는 불평등 조약을 인정하거나 홍콩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홍콩은 결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고 기술했다고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이는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 시진핑 중국 정권이 가속화한 '홍콩의 중국화'의 하나로 보인다.
다음 달 1일 홍콩은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의 품에 다시 안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150년간 영국의 통치를 받던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지 25년 만에 최대 격변기를 지나가고 있다.
◇ "50년 '고도의 자치' 약속 깨져"
홍콩은 1841년 1차 아편전쟁과 1860년 2차 아편전쟁을 거치며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청나라는 두 전쟁에서 지면서 홍콩섬과 카오룽 반도를 차례로 영국에 할양했다.
영국은 이어 1898년 홍콩 영토의 90%를 차지하는 북부 신계(新界·뉴테리토리)를 99년간 조차(租借)하는 추가 협정을 맺으며 홍콩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며 신중국의 탄생을 선언한 중국공산당은 이 '99년 조차'를 연장할 생각이 없었다.
이에 영국은 조차 기한 만료가 다가오자 중국과 협상에 들어갔고 1984년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을 체결했다.
홍콩이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로도 2047년까지 50년 동안 고도의 자치와 함께 기존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합의한 내용이다.
영국은 1997년에 신계만 반환하면 됐지만 돌려줄 의무가 없던 홍콩섬과 카오룽 반도까지 중국에 넘기면서 이 같은 조건을 중국에 내걸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5년이 되기도 전에 중국이 약속을 깨고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영국은 비판하고 있다.
중국이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지난해에는 홍콩의 선거제를 전면 개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홍콩 민주 진영은 사실상 궤멸했고, 홍콩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 2019년 반정부 시위 '게임 체인저'
홍콩 관측통들은 시 주석이 집권한 후 중국의 홍콩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강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반정부 시위가 쐐기를 박았다고 본다.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79일간 도심을 점령하는 '우산혁명'에 이어 2019년 송환법 반대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자 중국이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홍콩 손보기'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것이다.
홍콩 최대 야당 민주당의 부주석 출신으로 교통주택부 장관을 지낸 앤서니 청은 명보와 인터뷰에서 "2019년 반정부 시위는 '게임 체인저'였다"며 "중국 정부는 홍콩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홍콩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 중국 정부의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의 홍콩에 대한 감독 역할이 점점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반정부 시위에 놀란 중국 정부는 직접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180여명이 체포됐고 민주 진영 단체와 노조·매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교과서 개편도 반정부 시위의 여파다.
친중 진영에서 2019년 시위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 고교 시사교양과목 '통식' 탓이라고 주장하자 교육 당국이 해당 과목을 전면 개편하며 이름을 '공민사회발전'으로 바꿨다.
개정된 교과서는 폭력적인 반정부 시위로 인해 이듬해 중국 정부가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고 강조했다.
◇ 홍콩 엑소더스…BNO 여권 54만명 발급받아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도 많은 이들이 홍콩을 떠났다.
그러나 지금 그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있다고 홍콩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헥시트'(홍콩+엑시트)다.
30대 직장인 엠마(가명) 씨는 연합뉴스에 "내 주변에서만도 10여명이 최근 2년간 런던으로 떠났다. 모두 영구 이주했다"며 "런던에 가면 거리에서 아는 이들을 만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제이드(가명) 씨는 "홍콩 정부는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지만 1997년을 앞뒀을 때보다 국가보안법 제정 후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떠났다. 이건 홍콩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SCMP는 이달 영국 정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19년부터 현재까지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발급받은 홍콩인이 54만1천873명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태어난 홍콩인들을 대상으로 BNO 여권을 발급했다.
BNO 여권 보유자는 비자 없이 6개월간 영국에 체류할 수 있는데, 영국 정부는 홍콩국가보안법 시행에 반발해 지난해 1월부터 BNO 여권을 가지고 있거나 과거에 보유했던 홍콩인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SCMP는 "홍콩이 국가보안법과 엄격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1997년 이래 최대 엑소더스에 직면했다"며 그 과정에서 서둘러 떠나느라 손해를 보고 집을 파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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