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군인 사상자 증가·전비 급증…소모전 양상
유럽 에너지난…식량난으로 개도국 난민 증가 우려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2월24일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전쟁의 고통과 피해가 전세계에 확산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개월째인 전쟁은 장기전으로 방향을 트는 흐름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19일(현지시간) 독일 언론 인터뷰에서 "전쟁이 수년간 지속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식량 가격 상승 등 부작용을 거론하면서 "큰 비용을 치르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마치 한반도 상황처럼 '종전' 없이 초장기 대치 상태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17일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점령지를 '러시아화'를 통해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점령지 탈환을 목표로 세운 만큼 당분간은 협상을 통한 휴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양측의 인명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에 따르면 동부 격전지에서만 우크라이나 병사가 하루 100명씩 전사하고 부상자도 500명씩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군도 비슷한 규모의 사상자를 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양측 모두 뚜렷한 성과 없이 피해만 키우는 소모전에 들어갔다고 진단했다.
민간인 피해는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개전 이후 지난달 말까지 4천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희생자 가운데 261명은 어린이로 파악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적어도 수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말했다.
격전지였던 남부 마리우폴 관리들은 이 도시에서만 시민 2만1천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한다고 전했다. 동부 돈바스의 요충지 세베로도네츠크에서도 민간인 1천5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관리들이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1천300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한 것으로 유엔은 추산하고 있다. 이중 700만 명은 국외로 탈출했고 나머지는 국내 피란민이다.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배후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개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총 56억 달러(약 7조2천억 원)에 달하는 무기 지원 패키지를 제공했다.
미국은 무기 지원과는 별도로 우크라이나에 식수, 의료품, 생필품 등을 위한 2억2천500만 달러(약 2천90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도 별도로 제공할 예정이다.
미국과 영국 등 나토 동맹국들은 당초 확전을 우려해 장거리포와 미사일 시스템 등 중화기 지원을 주저했으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우크라이나 측의 절실한 요청으로 무기 체계 지원을 강화하고 있어 전비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신속하고 충분한 무기 지원만이 전쟁을 조기에 종식해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더욱 과감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서방이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제한하는 제재를 가하고 이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차단하는 등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유럽에선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대폭 줄임에 따라 유럽 국가들은 가스 배급제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잇단 공급 감축 조치를 통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통해 독일에 수송되는 가스 물량을 60%나 줄였다. 이는 독일을 거쳐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 등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축소에 대응해 석탄 의존도를 높이는 에너지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러시아 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석탄 발전을 다시 늘릴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이는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독일은 2030년까지 석탄 발전을 폐지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러시아가 서방 국가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이에 역행하는 조처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오스트리아도 폐쇄한 석탄 발전소를 재가동할 계획이다.
러시아군이 흑해 항구를 봉쇄하면서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의존했던 아프리카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사헬지역에서는 10여 년 만에 최악의 흉년으로 1천800만 명이 대기근에 직면해 있다.
빈곤 지역의 식량난은 연쇄적으로 난민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아프리카발 난민의 유럽 이주 관문 역할을 하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곡물 수입에 의존하던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등의 개발도상국들은 식량부족으로 사회 불안이 발생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식량 부족 등 경제난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튀니지, 파키스탄, 페루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부르키나파소, 말리, 차드 등에서도 불안정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유럽 국가 정상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오데사를 개방해 식량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식량 부족 사태에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취약 국가들이 생지옥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최선책은 전쟁을 끝내고 항구를 다시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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