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레미콘값 15% 이상만 올라도 기본형건축비 '수시 고시'
부동산원에 '택지비 검증위' 신설… 심사·검증 투명성 제고
(세종=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정부가 21일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와 고분양가 심사제 등의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이들 제도가 경직적으로 운영돼 주택공급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 택지비 산정을 감정가 기준으로 하는 데다 고급 마감재 등의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그동안 민간과 조합 측의 불만이 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제 역시 심사 기준이 자의적이고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부는 그동안 업계와 조합 등이 제기한 문제를 이번 개선안에 빠짐없이 담아 적정한 선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사업성을 고려할 때 충분치 않은 수준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 분상제 총회 운영비는 총사업비의 0.3% 정액 반영
국토부는 이날 분양가 상한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분양가 산정 시 세입자 주거 이전비, 영업손실 보상비, 명도 소송비, 이주비에 대한 금융비, 총회 운영비 등을 필수 경비로 인정해 분양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공공택지에서 벌이는 사업과 달리 재건축·재개발은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데다 기존 거주자의 이주나 명도 등 절차가 필수적인데 그동안은 이런 비용이 분양가 산정에 반영되지 않아 조합 등에서 불만을 제기해 왔다.
국토부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주거 이전비와 영업손실 보상비는 토지보상법상의 법정 금액을 반영하기로 했다.
주거 이전비의 경우 세입자는 가구당 4개월 가계지출비(4인 기준통상 2천100만원)를, 현금청산 소유자는 가구당 2개월분의 가계지출비를 각각 반영해주기로 했다.
영업손실 보상비는 휴업의 경우 4개월 내 영업이익과 이전 비용과 이전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액을 계산해 반영하고, 폐업하는 경우 2년분 영업이익과 영업용 고정자산 등의 매각손실액을 반영하기로 했다.
명도소송비는 소송에 들어간 변호사 수임료와 법인 인지대 등의 실제 비용을 반영한다.
조합원 이주 비용 조달을 위한 이주비 대출이자는 대출 계약상 실제 발생한 이자 비용을 반영하되 분양가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표준 산식으로 상한을 설정한다.
표준 산식은 '종전 자산가 × 해당 사업장 소재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 대출 기간 × 한은 예금은행 가중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적용한다.
조합의 의사결정을 위한 총회, 대의원회의, 주민대표회의 등의 운영비도 필수 비용으로 반영한다. 다만 조합마다 정비사업 규모나 사업 지속기간 등이 제각각이어서 조합 운영비는 총사업비의 0.3%를 정액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국장)은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번 제도 개선으로 분양가가 최대 4%에서 1.5%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걸로 예측된다"며 "추가로 지출해야 할 비용이 많은 재개발이 재건축보다 분양가가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제시한 부동산원의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서울의 A재개발 사업장의 경우 이번 제도 개선으로 분양가가 약 2.3%(3.3㎡당 55만원)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A사업장의 현행 분양가는 3.3㎡당 약 2천440만원 수준이지만 이번 제도 개선으로 주거이전비(1만원), 손실보상비(25만원), 명도소송비(6만원), 이주비 금융비(10만원), 총회 등 소요경비(4만원) 등이 추가되고 기본형 건축비 상승액(9만원)까지 더해지면서 분양가가 약 2천495만원으로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B재건축 사업장의 경우 현재 3.3㎡당 2천580만원인 분양가가 명도소송비(9만원) 등이 추가로 반영되면서 약 2.3%(60만원)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됐으며, 서울 C재건축 사업장은 이주비 금융비(23만원) 등이 더해져 3.3㎡당 분양가가 지금보다 1.5%(35만원) 오른 2천395만원이 될 것으로 조사됐다.
조합 등이 강하게 요구해 온 택지비 산정 개선 방안은 이번에 담기지 않았다.
◇ 철근+레미콘값 15% 이상만 올라도 기본형건축비 '수시 고시'
국토부는 최근 자잿값 급등 등의 상황을 고려해 기본형 건축비 산정·고시 제도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현재 기본형 건축비는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정기 고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고시 3개월 뒤 주요 자잿값이 15% 이상 변동되면 재고시하지만 최근처럼 자잿값이 급등하는 시기에는 '3개월·15%' 기준도 부족하다는 업계의 불만이 있었다.
실제로 자잿값이 크게 뛰었는데 분양가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에는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아 일부 사업장들이 기본형 건축비 인상을 기다리며 공사를 미루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신속한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고 보고 제도의 틀 자체도 바꿨다.
국토부는 먼저 2007년 제도 도입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건축비 반영 자재 품목을 교체·추가하기로 했다.
현재 반영 품목은 레미콘, 철근 PHC 파일, 동관 등 4개인데 이 가운데 사용 빈도가 낮은 PHC 파일과 동관을 빼고 창호유리, 강화합판 마루, 알루미늄 거푸집을 추가해 5개로 늘렸다.
아울러 단일 품목 가격 15% 상승 시 외에도 기본형 건축비 비중 상위 2개 자재(레미콘·철근) 가격 상승률의 합이 15% 이상인 경우나 비중 하위 3개 자재(유리·마루·거푸집) 상승률의 합이 30% 이상인 경우라면 언제라도 기본형 건축비를 조정할 수 있게 했다.
김 국장은 "예를 들어 철근값이 10% 오르고 레미콘값이 14% 올랐다면 실제로 공사비는 24% 오른 셈이어서 철근값이 24% 오른 것과 똑같은 충격을 준다"면서 "이 경우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반영되지 않지만, 새 제도에서는 3개월 이내라도 반영해 비정기 고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HUG의 고분양가 심사 시에도 자재비 급등 요인을 반영해 주기 위해 '자재비 가산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자잿값의 단기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보완책이다.
자재비 가산은 최신 기본형 건축비 상승분에서 최근 3년간 평균 상승분을 제외한 비율로 산정한다.
이를테면 올해 3월(최신) 기본형 건축비 상승분인 2.64%에서 최근 3개년 평균 상승분(1.85%)을 뺀 0.8%를 현재 단기 자재비 급등분으로 계산한 뒤 여기에 통상 분양가 중 건축비 비율(40%)을 곱해 '0.32%'를 가산비율로 산출한다.
기존 방식으로 정한 분양가가 5억원이라면 여기에다 자재비 급등 가산분(0.32%)을 추가로 반영해 5억160만원이 최종분양가로 결정되는 식이다.
◇ '택지비 검증위' 신설해 투명성 높인다
한국부동산원에 '택지비 검증위원회'를 신규 설치해 민간택지 택지비 산정 검증을 주관하도록 한 것은 택지비 검증 기능을 강화하고 검증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동안 감정평가기관이 산정한 택지비를 부동산원이 단독으로 검증하는 과정에서 검증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고 검증이 주관적으로 이뤄진다는 불만이 있었다.
이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택지비 검증위원회를 통해 검증 과정을 투명하게 개선하고 해당 감정평가사의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신뢰도 제고에 나선 것이다.
일부 조합 등을 중심으로 택지비 검증을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국토부는 택지비가 분양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 이는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감정평가 시 오기·오산 등 단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정평가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는 수준에서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
HUG의 고분양가 심사와 관련해서도 합리성이 제고된다.
현재 HUG의 고분양가 심사에서 시세 비교를 위한 '인근 사업장'은 500m 이내, 준공 20년 이내, 사업 안정성·단지 특성 유사성 등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다.
다만 준공연도 편차가 커(최대 20년) 노후 단지가 많은 경우 비교의 적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앞으로는 인근 사업장 선정 시 준공 시점 기준을 20년에서 10년으로 변경한다.
아울러 고분양가 심사 시 세부 평가 기준과 배점을 모두 공개하도록 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이의신청 절차도 신설하기로 했다.
분양 지연 등을 방지하기 위해 이의신청은 심사가격 통보 후 7일 이내, 인근 시세 대비 70% 이하인 경우에만 접수할 수 있도록 제한 요건을 뒀다.
국토부는 이번 분양가 상한제 개선과 관련해 공동주택 분양가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입법 예고와 규제 심사 등에 즉시 착수하기로 했다.
이번 제도 개선책은 현 시점에서 입주자 모집 공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업장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일반분양분만 5천가구에 육박하지만, 현재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으로 공사 중단 사태를 맞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등의 단지도 적용 대상이 된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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