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면 통치권' 강조…홍콩판 국가보안법 추가 제정 추진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은 '아시아 금융 허브'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다음 달 1일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는 홍콩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질문이다.
이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유지와 연관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베이징을 찾은 존 리 홍콩 행정장관 당선인에게 일국양제는 지난 25년간 성공적으로 이행됐다고 자평하며 "이 원칙을 포괄적이고 정확하게 이행한다는 중앙정부의 결심은 흔들린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홍콩 시민사회와 서방의 인식은 일국양제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은 자유로운 국제 금융허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 변방의 작은 도시로 전락할 것인가.
◇ 퇴보하는 홍콩의 자유·민주주의
영국과 중국은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로도 2047년까지 50년 동안 고도의 자치와 함께 기존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국양제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홍콩의 선거제를 '애국자'만 참여할 수 있도록 뜯어고치는 등 '홍콩의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국양제도 무색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997년 반환 이래 홍콩에서는 20년 넘게 활기찬 시민사회 활동, 거리 행진, 시위가 펼쳐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국가보안법과선거제 개편을 통해 변했다"고 지적했다.
존 번스 홍콩대 교수는 SCMP에 "홍콩은 여전히 종교, 교육, 언론, 인터넷, 공공 서비스와 법에서 중국 본토보다 훨씬 자치를 누린다"면서도 "일국양제가 살아남더라도 중국 정부가 통제를 강화하면서 훨씬 제한적인 형식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 친중 진영 최대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DAB)을 창당한 재스퍼 창 전 입법회 의장은 "일국양제 성공의 핵심은 급변한 홍콩의 정치 환경 속에서 중국이 민주 진영과 대화를 재개하느냐 여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홍콩에 대한 전면 통치권을 이미 행사하는 상황에서 홍콩 장악을 강화하면서 일국양제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느냐는 의혹이 인다"면서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港人治港)는 원칙이 껍데기만 남는다면 득 볼 게 없다는 것을 중국 지도자들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되며 많은 홍콩인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것이 잘 돌아간다고 말할 수 없다"며 지난해 선거제 개편 후 치러진 입법회 선거의 투표율이 역대 최저(30.2%)를 기록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홍콩 기본법에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 선거가 궁극적으로 직선제를 목표로 하고 있음이 명기돼 있다며 "중국 정부가 이를 성취할 길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 최대 야당 민주당의 부주석을 지낸 앤서니 청은 명보에 "일국양제가 유지되려면 항인치항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며 "일국양제는 이어지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고도의 자치'에서 '고도'가 어느 지점까지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행정장관은 홍콩 740만 국민의 0.02%에 불과한 인원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에서 뽑고 있으며,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회 의원의 절반 이상도 소수가 참여하는 간접 선거로 선출된다. 행정장관과 입법회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선거위원회도 간접선거를 통해 친중 진영이 장악했다.
다음 달 1일 취임하는 존 리 차기 행정장관은 아예 중국 정부의 낙점 속 단독 출마해 경선도 없이 당선되며 정통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국, 홍콩에 대한 '전면 통치권' 강조
중국은 올해 들어 홍콩에 대한 '전면 통치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일국양제의 확고한 이행'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전면 통치권'을 강조하며 홍콩이 중국의 땅임을 상기시킨다.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한 후 홍콩의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홍콩 정부에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별도로 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홍콩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홍콩국가보안법을 보완하는 별도의 국가보안법을 홍콩이 제정해 자신들이 만든 법에 담기지 않은 다른 죄목을 담아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 진영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체포되고 당국의 압박 속 언론사들이 문을 닫는 등 공안 정국이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 경찰 출신 강경파 존 리가 이끄는 홍콩은 '경찰국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국가보안법으로 홍콩의 국제적 평판은 이미 영향을 받았다"며 홍콩의 법치가 점점 더 공산당이 법원을 통제하는 중국 본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비영리법인 '세계 사법정의 프로젝트'(WJP)'가 지난해 139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법의 지배 지수'에서 홍콩은 4년간 유지하던 16위에서 19위로 떨어졌다. 중국은 98위다.
일각에서는 중국 본토 출신 법관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제로 코로나에 떠나는 외국인들
국가보안법이 홍콩인들의 엑소더스를 촉발했다면 '제로 코로나' 정책은 외국인들의 엑소더스를 낳았다.
홍콩 금융권에서는 고급 인력 유치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홍콩 국제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계속 빠져나가면서 홍콩 사회의 다원성을 상징하던 외국인 커뮤니티가 쪼그라들고 있다.
여러 금융 기관과 다국적 기업이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인력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호텔 격리 정책이 계속되면 홍콩이 국제금융 허브의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다른 곳이나 중국 본토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면 어떻게 허브가 되겠나"라고 토로했다.
행정장관의 자문기구인 행정회의의 버나드 찬 의장도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홍콩의 아태 지역 허브 역할을 손상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지난 1월 주홍콩 유럽상공회의소(ECC)는 홍콩이 현재의 엄격한 여행 제한 정책을 2024년 초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외국인 인력 유출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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