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비의 성범죄 의혹에 제기된 민사소송 첫 평결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미국에서 한때 '국민 아빠'로 불리다가 수십건의 성범죄 의혹을 받고 추락한 코미디언 빌 코스비(84)가 이번에는 47년 전 10대 소녀를 성추행한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돼 6억5천만원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로이터, AP 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법원 배심원단은 21일(현지시간) 주디 후스(64)가 16살 때 코스비로부터 성추행당했다며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코스비의 성범죄가 인정된다고 평결했다.
그러면서 배심원단은 코스비에게 정신적 고통에 따른 피해 배상금 50만 달러(약 6억5천만원)를 후스에게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후스는 1975년 코스비를 공원에서 만나 알게 됐으며, 며칠 뒤 그의 초청을 받고 친구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의 자택 '플레이보이 맨션'에 갔다가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코스비는 37살이었다.
배심원단은 당시 코스비가 의도적으로 후스에게 유해한 성적 접촉을 저질렀으며, 그가 후스가 미성년자인 것을 알았다고 볼만한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스비가 강압적·사기적인 방법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후스의 주장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코스비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코스비는 이날 화상 증언에서 후스를 기억하지 못하며, 당시 자신은 미성년자와는 접촉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흑인인 코스비는 1980년대 시트콤 '코스비 가족' 등에 출연하며 한때 '국민 아빠', '국민 코미디언' 등으로 불렸으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여파로 그가 거의 50년에 걸쳐 50여명의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줄줄이 제기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코스비는 2004년 자택에서 스포츠 강사에게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2018년 9월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작년 6월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당시 법원은 코스비가 공정한 사법 절차를 누리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검찰이 불기소를 조건으로 걸고 코스비에게 민사 재판에선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도록 설득해 그가 응했는데, 이후 검찰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기소를 강행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그의 성범죄 혐의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풀려나게 되자 분노한 여성들이 추가로 코스비를 상대로 성범죄 폭로를 이어왔다.
후스는 수십년 전 사건으로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며 2014년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캘리포니아 법원에선 미성년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우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약 8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승리한 후스는 이날 법원 앞에서 "고문과도 같았다"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너무나 많은 눈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평결은 코스비를 상대로 제기된 민사소송으로는 처음 나온 것이다.
이날 재판에는 코스비를 고소한 다른 여성 3명도 참석했다.
이들 중 한명이자 배우인 릴리 버나드는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평결은 정의를 얻지 못한 모든 성폭력 생존자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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