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붐'에 영감 준 명곡 '제주도의 푸른 밤'
한 세대 넘게 사랑받으며 십수 번 리메이크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제주살이. 육지에서의 지치고 고된 삶을 뒤로 하고 제주로 이주해 산다는 뜻의 신조어다.
최근 십여 년 새 열병처럼 번진 트렌드이기도 하다. 아예 제주로 터전을 옮기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 유행하는 '제주 한달살이'라는 말처럼 장기 휴가나 이직 기간 등을 활용해 몇 주 또는 몇 달간 제주도에 한 번 살아보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제주살이'라는 말에는 피곤하고 지친 현대인의 로망이 담겼다. 쳇바퀴 같은 생활과 관계의 피곤함, 도시의 소음과 교통 체증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해 고요한 무릉도원을 찾아 떠나는 느낌이랄까.
◇ 술집에, 카페에, 사람에 지쳤다면 그 섬에 가볼까?
이런 제주살이 열풍에 남다른 영감을 준 노래가 있다. 사실 젊은이들은 누가 원곡자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 소절만 들어보면 아는 노래. 바로 '제주도의 푸른 밤'이다.
1980년대 전설의 록 밴드 '들국화'의 베이시스트 출신 최성원이 1988년 여름에 솔로 데뷔앨범을 통해 내놓은 대중가요로, 혜은이의 '감수광'을 제치고 제주도를 상징하는 대표곡이 됐다. 발표한 지 34년이 됐으나 여전히 사랑받는 노래인 동시에 정식 앨범에서만 10차례, 각종 이벤트성 앨범까지 합치면 십수 번이나 리메이크된 명곡이다. 성시경, 유리상자, 태연, 소유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존경을 바쳐 다시 불렀다. 해체됐던 그룹 들국화가 2013년 재결성할 때 발매한 4집 앨범 '들국화'에도 리메이크돼 실렸다.
이 노래 가사 중에서도 우리가 신변을 정리하고 제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강하게 들게 한 대목은 첫 소절일 거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경쾌한 듯 따스한 멜로디와 악기 편성이 시적인 가사에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우리 마음은 벌써 제주도 유채밭이나 파란 바다가 보이는 백사장에 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2절에서 나오는 이 대목 역시 우리의 '보상 심리'를 강력히 자극한다. 모든 사람은 가끔 '자기 연민'에 빠질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까지. 떠나자. 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정서는 이태원의 노래 '솔개'(1988)의 한 소절을 소환하기도 한다.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 "와보니 현실은 다르네" 눈물 흘리며 돌아가는 육지인들
이처럼 적지 않은 육지인이 꿈꾸던 제주살이. 그 덕에 제주도는 다른 지방과 달리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전입 인구가 느는 기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제주도에 왔다가 정착 못 하고 떠나는 외지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평소에 머리로는 알아도 잊고 있는 그것. 바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다. 살아보면 우리가 맞닥뜨리는 일들에서 현실은 대부분 생각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이었다.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보는 평화롭고 낭만적인 일상을 기대했지만, 하루 이틀은 몰라도 현실은 달랐다.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라고 했던 마음은 어느새 "파도 소리 지겹다"는 원망으로 바뀌기도 했다.
예상보다 일자리는 적고 '먹고 재워주는 장사' 위주인 자영업은 경쟁이 치열했다. 게다가 중국인의 부동산 투기까지 가세하며 땅값 집값은 단기간에 천정부지로 뛰었다. 설상가상 코로나 팬데믹에 관광업이 붕괴해 일자리 감소와 임금 삭감을 부르자 오히려 도시보다 더 팍팍한 현실이 이주민을 짓눌렀다. 일부에서는 '괸당 문화'로 알려진 배타적 섬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2019년부터는 제주도 전출 인구가 전입 인구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 제주가 '드림 아일랜드'로 남으려면
1980년대 후반에 최성원은 '떠나요 둘이서 힘들 게 별로 없어요~'라고 노래했지만, 2020년대의 제주도는 '떠나오면 힘들 게 꽤 많은' 섬이 됐다. 제주도는 지금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국제관광도시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사람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하며 오래전 과거처럼 다시 "바람, 돌, 여자만 많다"던 삼다도로 회귀할까. 혹 참담한 실패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듯, 제주살이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다. 제주도가 그들에게 미래 비전을 선사하는 '꿈의 섬'으로 영원히 남길 응원해본다.
◇ 제주도의 푸른 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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