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표시 채권 이자 부담에 재무구조 악화도 우려
국내기업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환율 효과도 옛말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김철선 기자 = 23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00원을 넘어서며 국내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것은 약 13년 만에 처음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수출단가 측면에서는 고환율이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원자재 수입과 맞물려 물가상승이 심화하는 국면이라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환율이 정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고환율이 당장의 영업 활동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면서도 "환율의 움직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표시 채권 발행이 많은 정유업계는 환율 상승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유업체가 외국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유 공정을 거쳐 제품을 내놓기까지는 약 두 달이 걸리는데 이 기간 현금이 묶이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자금을 융통할 목적으로 유전스(Usance)라는 채권을 발행한다.
환율이 치솟으면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분기 실적에 반영되는 영업외손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원가가 제품가에 그대로 반영되는 특성상 환율이 오르면 매출액도 늘어나는 만큼 어느 정도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는 게 정유업계의 설명이다.
정유업계는 또 고환율 상황이 지속될 경우 수요 위축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다 환율을 적용해 산정되는데 국제 유가가 계속 치솟는 데다 환율까지 오르면서 기업은 물론 소비자의 부담도 더 커지고 있다.
통상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공식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우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원화 표시 매출액이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환율 상승으로 인한 효과는 과거처럼 크지 않다는 것이 기업들의 분석이다.
수출이 주력인 자동차·조선·가전 등의 경우 단기적으로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보겠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는 등 부작용도 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과 판매를 늘리고 있어 환율 영향을 덜 받는 측면도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오른다고 하면 국내에서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효과는 있지만 미국에도 공장이 있기 때문에 아주 좋지만도 않은 상황"이라며 "최근 국내기업들의 글로벌 생산기지가 베트남과 중국, 미국, 중남미 등 여러 곳에 있기 때문에 환율 상승으로 인한 기대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주력 수출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 업계는 환율이 오르면 원재료 가격 등 비용이 덩달아 늘어나지만, 전반적으로는 수익성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 필수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반도체 장비나 원재료 비용 지출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업체들이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환율 상승에 따른 대체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환율 상승으로 실리콘 웨이퍼, 희귀가스 등 반도체 원재료의 비용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에서도 전기료 인상을 앞두고 있는데 반도체 원재료비 중 비중이 가장 높은 에너지 가격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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