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공공장소 권총 휴대 권리 인정 판결…바이든 "실망" 비판
상원, 총기규제법안 표결만 남겨둬…언론 "총기규제 깊은 갈등 보여줘"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인 연방대법원과 의회가 23일(현지시간) 총기 규제와 관련해 상반된 움직임을 보였다.
대법원이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 권리를 확대하는 판결을 내린 반면 상원은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의 처리에 필요한 절차를 마친 것이다.
미국의 오랜 난제인 총기 규제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간 간극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법원은 이날 일반인이 집이 아닌 야외에서 권총을 소지할 수 없고 필요에 의해 휴대할 경우 사전에 면허를 받도록 한, 1913년 제정된 뉴욕주의 주(州)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휴대할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은 보수 6명, 진보 3명이라는 대법관 9명의 성향에 따라 6 대 3으로 결정됐다. 뉴욕의 주법이 합헌이라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연방헌법은 집 바깥에서 정당방위를 위해 개인이 권총을 휴대할 권리를 보호한다며 뉴욕주의 주법은 일상적 정당방위 필요가 있는 개인이 무기를 소지할 권리의 행사를 막아 위헌이라고 밝혔다.
진보 성향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대법원이 총기 폭력의 심각성을 해결하지 않은 채 총기권을 확대했다며 이번 판결이 총기 폭력에 대응할 능력을 잃게 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이번 판결은 뉴욕주처럼 공공장소에서 권총 소지시 면허를 받도록 한 워싱턴DC와 최소 6개 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코네티컷 등 3개 주는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 문제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재량권을 주고 있다.
총기 규제를 촉구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며 "이 판결은 상식과 헌법 모두에 배치되고 우리 모두를 매우 괴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주가 총기 규제법을 제정하고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도 매우 충격적인 판결이라면서 "이 암흑의 날이 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상원은 대법원의 판결이 알려진 2시간쯤 뒤에 총기규제법안에 대한 토론을 종결하는 표결을 실시해 찬반 65 대 35로 무제한 토론을 통해 의사진행을 막는 절차인 필리버스터를 종료하기로 했다.
이제 이 법안은 상원 본회의 표결 절차만 남겨뒀지만, 법안 협상에 공화당 의원들도 참여했음을 감안할 때 통과가 예상된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 역시 상원이 법안을 처리하면 이를 표결에 붙여 통과시킨 뒤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법안을 보내 공포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회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달 뉴욕주 버펄로, 텍사스주 유밸디 총기 난사 사건 발생 후 총기 규제 강화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상원이 마련한 80쪽짜리 법안은 총기를 구매하려는 18∼21세의 신원 조회를 위해 미성년 범죄와 기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21세 미만 총기 구입자의 정신건강 상태를 관계 당국이 최소 열흘간 검토하는 내용이 골자다.
더 많은 총기 판매업자에게 신원 조회 의무를 부여하고 총기 밀매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위험하다고 판단된 사람의 총기를 일시 압류하는 '레드 플래그'(red flag) 법을 도입하려는 주에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법원의 판결과 상원의 표결에 대해 총기 문제를 둘러싼 미국 내 깊은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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