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놔"…민주, 중간선거 쟁점화 예고
공화 "용기있는 판결"…일부 州, 즉각 낙태 금지 선언·휴일 지정도
민주 주도 州는 원정낙태 지원 다짐…시민단체 반응도 극명하게 갈려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약 50년간 유지한 낙태권 보장 판례를 폐기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24일(현지시간) 판결이 미국을 둘로 쪼개버렸다.
대법원이 이날 임신 후 약 24주까지 낙태를 인정한 지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파기함으로써 낙태권 보장이라는 연방의 보호막이 사라졌다.
낙태 금지론자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했고, 일부 주(州)는 즉시 낙태 금지 조처를 단행했다.
반면 낙태 옹호론자는 미국의 역사를 후퇴시켰다고 비난하며 낙태권 보장을 위해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당장 정치권의 공방이 불붙었다.
낙태권을 옹호하는 민주당은 연방 차원의 입법을 위해 힘을 실어달라며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쟁점으로 삼을 것임을 예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주법으로 낙태가 불법이었던 1800년대로 돌아간 것이다.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며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의회가 연방 차원의 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급진적 공화당이 건강의 자유를 범죄화하기 위해 십자군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여성과 모든 미국인의 권리가 11월 투표용지 위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 내 흑인 의원 모임은 낙태권 접근이 전례 없는 공격을 당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맞서 낙태 금지를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을 따른 것이자 오래 전에 했어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용감하고 옳은 판결이라면서 "헌법과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역사적 승리"라고 환영했다.
CNN은 최근 공화당 하원이 기존 판결 폐기시 어떤 낙태법안을 내놓을지 논의에 나섰다고 전했지만, 기존에 내놓은 법안보다 낙태 규제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쏠린 분위기다.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 의원은 임신 20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를 15주로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원에는 태아의 박동이 감지되면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공화당 의원 1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제출돼 있다.
주(州)별로도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낙태권 인정 여부는 주 정부와 의회의 몫으로 남겨진 상태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미 구트마허연구소는 미 50개 주 중에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이 중 13개 주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 파기시 낙태 규제를 시행할 수 있는 '트리거 조항'을 담은 법을 마련한 곳들이다.
실제로 켄터키, 루이지애나, 사우스다코타 주는 대법원의 판결과 동시에 자동으로 낙태를 불법화하는 '트리거 조항'을 갖고 있다.
미주리, 루이지애나 주는 대법원 판결 직후 낙태가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에릭 슈미트 미주리주 법무장관은 "생명의 신성함을 위한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대법원의 판결이 이뤄진 이날 하루 휴무를 결정하고, 앞으로도 연례 휴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반면 캘리포니아나, 오리건, 워싱턴 주는 공동 성명을 통해 낙태 접근권 보장 의지와 함께 타주의 여성이 낙태시술을 받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타주의 낙태 희망자를 돕기 위해 1억2천500만 달러의 예산을 요청했고,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는 보험사가 낙태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제임스 레티샤 뉴욕주 법무장관도 "뉴욕은 낙태를 찾는 누구에게라도 안전한 대피처가 될 것"이라며 원정 낙태 지원 입장을 밝혔고,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낙태권 유지를 위해 죽기살기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83명의 선출직 검사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낙태금지 집행은 우리가 서약한 의무에 반하는 것"이라며 낙태를 행한 여성에 대한 기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시민단체들도 정반대 반응을 보였다.
낙태 금지를 주장한 전국생명권위원회의 캐럴 토비어스 위원장은 "마침내 이 일이 이뤄진 데 대해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서도 "이 판결로 낙태가 모두 불법화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긴 전투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낙태 옹호단체인 가족계획행동기금의 알렉시스 맥그릴 존슨 회장은 "우리의 몸과 존엄성, 자유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자유를 재건하고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jbry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