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물가담당 하종림 이코노미스트…"침체 수준은 아직 아냐"
"물가, 내년 중반까지 높은 수준"…"70년대 오일쇼크 때와 세 가지 달라"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경기둔화 속도가 70년대 오일쇼크 때의 2배 이상으로 나왔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하다는 경고음을 줘야겠다고 결론 냈습니다"
세계은행(WB)은 지난 7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5개월 새 1.2%포인트나 낮춘 2.9%로 전망한 수정 보고서를 내놓으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했다.
WB는 그동안 경제 전망에서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터라 상당히 강한 톤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보고서 작성 과정, 특히 물가와 스태그플레이션 부분에서 한국 출신의 하종림 선임 이코노미스트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WB 내 경제전망그룹에서 물가와 통화정책 부문을 6년째 담당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4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2016년 코넬대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고 이후 WB에서 근무 중이다.
그는 최근 글로벌 경제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은 70년대와 비교해 3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3가지가 있다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한 국제사회와 각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 둔화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1인당 소득이 감소하는 경기침체까지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가 역시 서서히 하락하겠지만 내년 중반까지는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봤다.
다음은 하 이코노미스트와의 전화 인터뷰 일문일답.
-- WB가 최근 수정보고서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분석한 근거는 무엇인가.
▲ 스태그플레이션 정의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고 성장세의 빠른 둔화나 침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2021년 이후 물가가 전반적으로 많이 올랐지만 올해 초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왜곡에 따라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반면 성장률 전망은 전에 비해 많이 둔화했다.
-- 경기침체 우려가 크다. 세계 경제가 침체로 접어들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 경기침체는 1인당 소득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인 상황으로 정의한다. 70년대 이후 (경기침체가) 1975년, 1982년, 1991년, 2009년, 2020년 등 5번 있었다.
하지만 올해나 내년 1인당 소득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갈 것이라고 보고 있진 않다. 물론 둔화 폭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침체까지는 예상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경기침체 언급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 통계학이나 계량기법이 발달하다 보니 하나의 수치가 아니라 범위로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 마이너스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로 이해한다.
-- 향후 세계 경기의 변수는 무엇이라고 보느냐.
▲ 이전 전망 때보다 하방 위험이 다양하고 커진 것은 분명하다. 지정학적 위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과 이로 인한 중국의 봉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우크라이나 침공, 주요선진국의 금리인상 등이 얽혀 있다. 이런 위험이 현실화하면 올해 성장률은 2.1%, 내년은 1.5∼2%까지 떨어질 수 있다.
--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두고 단기 현상이라는 견해와 지속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고물가가 얼마나 오래 갈까.
▲ 올해 초만 해도 단기 현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공급 측면의 일시적 요인으로 물가가 상승한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 이후 국제유가가 더 크게 상승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올해 중반께 정점을 찍고 서서히 떨어지겠지만 내년 중반까지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높은 수준이란 각국 중앙은행이 목표한 물가수준을 상회하는 경우를 말한다.
-- 올해 중반 이후 서서히 하락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 수요와 공급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공급망 왜곡에 따른 공급 부족은 서서히 완화될 것으로 본다. 유가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안정될 것으로 가정했다. 수요 측면에선 지난해의 경우 전염병 대유행 이후 봉쇄가 풀리면서 수요가 강했다. 올해와 내년은 수요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봤다. 각국의 긴축 금리 정책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어떤가.
▲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1974년과 1979년에 공급 측면의 충격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인해 공급 부문의 충격이 컸다.
둘째, 공급 부문이 충격을 받기 전 완화적 통화정책이 지속됐다. 실제로 80년대 초까지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을 유지했다.
낮은 금리 수준이 개발도상국에서 국가 부채의 상승을 야기했다는 것은 세 번째 공통점이다. 개발도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수준이 198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민간 부채도 역대 최고치 수준이다.
-- 반대로 차이점도 있을까.
▲ 차이점도 크게 세 가지다. 일단 통화정책 체계가 바뀌었다. 70년대만 해도 통화정책이 물가, 금융안정 등 복수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했지만 지금은 모든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에 목표를 두고 있다.
경제 구조가 많이 유연화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70년대만 해도 물가, 임금, 금리에 대한 통제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경제가 자율화, 선진화하면서 선진국의 경우 물가 통제가 사라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80년 기준 노조 가입률이 60% 정도였지만 2020년 기준 20% 수준이다.
셋째, 전반적인 물가수준이 당시와 다르다. 인플레이션이 70년대 정점과 비교하면 아직 절반 수준이고,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하면 4분의 1 정도다. 임금 상승률도 미국을 제외하면 낮다. 실질 유가 수준은 70년대 대비해 3분의 2 정도에 머물고, 생산과 소비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떨어졌다.
--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고 경제적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제언을 한다면.
▲ 복합적 상황이어서 단편적 정책으로 접근하긴 어려운 문제다. 통화 정책이 가장 중요한데, 금리 변동 시기와 정도를 잘 조정하고 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신뢰를 얻도록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재정정책의 경우 2020년 확장으로 가다 점점 축소되는데 속도나 크기를 잘 계량해서 준비해야 한다. 금융 정책도 통화·재정 정책을 잘 뒷받침해야 한다.
구조적 정책 역시 필요하다.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등이 필요하다. 인위적 물가 통제는 중장기적으로 큰 부작용을 낸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생산성을 올리는 정책도 중요하다.
-- 이번 보고서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라고 보느냐.
▲ 한국을 특정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개도국이나 소규모 개방경제에 비춰서 말하고 싶다. 주요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다른 선진국, 특히 개도국의 긴축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는 그런 충격에 대비해 물가안정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공급 측면도 봐야 한다. 주요 원자재를 수입하는 국가는 공급 왜곡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국가에 비해 클 수 있다. 금융시장 변동성 증가에 대비해 공공과 민간 부채가 높은 국가, 특히 외화표시 부채일 경우 금융안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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