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재림 김지연 기자 =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파기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절반에 가까운 주(州)에서 낙태가 사실상 금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불법 시술이나 원정 낙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낙태권 논쟁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 사안이어서 11월 미국 중간선거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방대법원은 무엇을 판결했나.
▲ 여성의 낙태권(임신중절권)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로 대 웨이드' 판례(1973년)를 24일(현지시간) 연방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뒤집었다. 1788년 미국 헌법이 비준된 이후 낙태권 문제는 주(州)별 해석의 영역이었다가 대법원이 1973년 로 앤 웨이드 판결을 끌어내면서 헌법 권리로 인정됐다.
이를 뒤집은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반세기 동안 연방 차원에서 보장됐던 임신중절권 보호막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임신한 여성의 낙태권을 어느정도 보장하느냐는 각 주의 정부와 의회가 결정하게 됐다.
-- '로 대 웨이드' 판결이란.
▲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보장한 보루였다고 평가받는 판결이다. 1969년 낙태가 금지된 텍사스주에 살던 미혼 여성 노마 맥코비(22)는 원치 않게 임신하게 됐지만, 금전적인 이유로 낙태가 허용되는 다른 주에 가서 시술을 못 받는 상황이었다. 변호사와 상의 끝에 1970년 3월 '낙태 금지에 관한 텍사스주 법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헌법으로 보장된 사생활에 관한 권리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낙태 금지에 관한 법률을 집행하는 장본인인 당시 댈러스카운티 지방검사장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제기됐다. 맥코비는 신변 보호를 위해 본명 대신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따라서 이 역사적인 소송은 두 사람의 성(姓)을 따서 '로 대 웨이드'로 불리게 된다.
대법원은 1973년 1월 '7대 2'로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14조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약 임신 28주) 전까지는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결했다.
-- 연방대법원은 왜 49년만에 판례를 뒤집었나.
▲ 헌법에 임신중절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 의견문을 보면 미 연방대법원은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그런 권리는 헌법상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암묵적으로도 보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1973년 로 앤 웨이드 판결 당시 임신중절권이 헌법에 언급되지 않았어도 폭넓은 헌법 권리에 해당한다고 본 해석을 기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헌법에 언급 안 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있기는 하나, 그런 권리는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질서 있는 자유의 개념에 내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역사와 전통'에 입각한 권리 해석을 주장하며 헌법 원전에 입각해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 어느 주에서 언제부터 낙태가 금지되나.
▲ 낙태권 옹호 단체 구트마허연구소에서 집계한 '확실한 낙태 금지 시행' 지역은 50개 주 중 26개 주다. 대부분 낙태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우위인 곳이다.
26개 주 중 22개 주는 크게 성격상 3개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대법원판결과 동시에 곧바로 낙태 규제를 시행할 수 있는 '트리거(방아쇠) 조항' 적용 지역,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에 낙태를 금지한 법이 있었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시행하지 못했던 지역, 임신 6주 또는 8주 이후 낙태 금지 등 규제를 둔 지역 등이다.
트리거 조항이 적용되는 곳은 아칸소, 아이다호,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미주리, 노스다코타, 오클라호마, 사우스다코타, 테네시, 텍사스, 유타, 와이오밍 등 13개 주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그간 시행하지 못했던 곳은 앨라배마, 애리조나, 미시간, 웨스트버지니아, 위스콘신 등이다.
조지아, 아이오와,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4개 주는 임신 초기 외에는 낙태가 금지된 주다.
다만, 한 개의 주가 2∼3개 범주에 동시에 속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컨대 아칸소주 같은 경우 트리거 조항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대법 판례에 따라 낙태 금지법을 시행하지 못했다고 구트마허연구소는 밝혔다.
여기에 더해 플로리다, 인디애나, 몬태나, 네브래스카 등 4개 주는 판례 파기 시 낙태를 금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로 분류된다.
-- 임신중절 수술을 원하는 미국 여성의 선택은.
▲ 미 전역에서 낙태 자체가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닌 만큼 낙태를 허용하는 주로 이동해 수술을 받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낙태가 금지된 주에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가 허용된 주로 낙태를 위해 이동하는 원정 시술이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텍사스주에서 '원정 시술'하려는 여성은 가장 가까운 시술소(뉴멕시코주)까지 870㎞를 이동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니면 아예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서 시술을 하는 여성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낙태를 돕는 멕시코 시민단체 '네세시토 아보르타르'('나는 낙태가 필요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에는 벌써 소셜미디어를 통한 미국 여성들의 문의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상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려운 빈곤 계층은 무허가 시술소를 찾아 뒷거리를 전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는 임신중절 약 밀거래도 성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낙태권을 옹호하는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의 대응은.
▲ 민주당 소속 주지사를 둔 주정부들은 '낙태 피난처'를 자처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낙태를 위해 찾아오는 임신부를 보호하고 시술을 시행한 사람에 대한 소송을 방어하는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미네소타, 워싱턴,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등에서는 속속 행정명령을 발동하거나 관련 법적 장치 마련을 약속했다.
연방정부도 궤를 같이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례적으로 '직원 낙태권 보장' 성명을 내 "조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국무부는 모든 직원이 거주지에 상관없이 산부인과 시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성명에서 "군의 건강과 안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산부인과 시술 접근에 있어 어떤 차질도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판결 복구 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며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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