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 8구 해변 밀려온 뒤 남아공 간스바이 해역서 사라져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간스바이' 해역은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로 꼽히는 백상아리가 자주 출몰하는 천혜의 집결지로 알려져 있다. 백상아리가 몰려들다 보니 바닷속 철창 안이나 배 위에서 이들을 가까이 보고 체험하려는 관광객이 자주 찾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017년부터 범고래 한 쌍이 나타나 백상아리를 사냥하기 시작한 뒤 다른 백상아리들이 이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간스바이의 특정 해역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이어 섬 보호신탁기금'의 백상아리 전문 생물학자인 앨리슨 타우너가 이끄는 연구팀은 약 5년 반에 걸쳐 백상아리 이동 경로를 추적해 얻은 이런 결과를 '아프리카 해양과학 저널'(African Journal of Marine Science)에 발표했다.
저널 발행사인 '테일러 앤드 프랜시스'(Taylor & Francis)에 따르면 연구팀은 백상아리 14마리에게 태그를 부착해 얻은 자료와 현장 목격 등을 통해 백상아리 이동을 분석했다.
간스바이 해변에서는 2017년 이후 백상아리 8마리가 범고래 공격을 받아 죽은 채로 해변으로 밀려왔다. 이 중 7마리는 간이 사라진 상태였으며 일부는 심장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 같은 범고래 한 쌍에게 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해변으로 밀려오지 않은 다른 백상아리 사체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돌고랫과의 포유류인 범고래는 난폭한 편으로 다른 돌고래나 바다표범, 물개 등을 사냥하며 7~10m까지 자라 백상아리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타우너는 "초기에는 백상아리 몇몇 개체만 수주에서 몇 달 정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지만 현재 목격되고 있는 것은 세렝게티에서 사자가 늘어날 때 들개들이 대처하는 것과 똑같은 대규모 회피 전략"이라면서 "이 해역에 범고래가 자주 출몰할수록 백상아리가 나타나지 않는 기간은 더 길어진다"고 했다.
간스바이에 살며 15년간 백상아리를 연구해온 그는 백상아리 자료가 수집된 이래 일주일 이상 해역에서 백상아리가 목격되지 않은 것은 2007년 1주, 2016년 3주 밖에 없었다면서 지금과 같은 백상아리 부재 현상은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백상아리가 사라지면서 백상아리의 먹이가 됐던 중간 포식자인 무태상어(Bronze Whaler Shark)와 남아프리카물개가 늘어나면서 멸종위기종인 아프리카 펭귄을 위협하는 등 간스바이의 생태 환경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범고래가 성체가 되기 전 백상아리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이는 더딘 성장 속도로 이미 취약한 개체 수를 보이는 백상아리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한 논문은 이들 범고래가 상어 3종을 주요 먹이로 삼는 희귀종의 일원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제시했다.
연구팀은 범고래의 공격 이외에 이 해역의 수온 변화나 어로 활동이 백상아리의 부재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2007년부터 갑자기 일부 해역에서만 줄어들고 장기화하는 것은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타우너는 "이번 연구 결과는 바다의 대형 포식자가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밝혀냄으로써 다른 포식자와의 공존의 역학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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