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 거부권 쥐고 목표 관철해 내
"나토엔 골칫거리지만 튀르키예 역할 필요"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막을 올린 '신냉전 시대'의 안보 전환기 속에서 진영 논리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튀르키예(터키)의 '이단아적 외교 전략'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지난달 29∼30일(현지시간)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최종 승자'는 서방의 지원을 재확인한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실리를 챙긴 튀르키예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번 정상회의의 최대 의제는 러시아의 군사·경제적 압박에 맞선 나토의 확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 중립국을 고수한 스웨덴과 핀란드가 비로소 나토에 가입하는 공식 절차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튀르키예는 막판까지 거부권을 손에 쥐고 서방을 압박했다.
나토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까지 나토 사무총장과 스웨덴·핀란드 정상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만나 설득하며 애를 태워야 했다.
개회가 1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그날 밤 늦게 튀르키예가 극적으로 두 국가의 나토 가입에 동의한 뒤에야 서방은 안도해야 했다.
튀르키예가 끝까지 가입을 거부한다면 러시아에 맞서는 '서방 단일 전선'의 모양새가 구겨질 수밖에 없는 터였다.
튀르키예는 최대 안보 위협 세력으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과 페토(FETO·펫훌라흐 귈렌 테러조직) 연관자 33명을 이들 두 북유럽 국가에 송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튀르키예에 대한 이들 정부의 무기 수출 금지도 해제하는 실리를 챙겼다.
이런 긴박한 외교적 움직임 속에 미국이 튀르키예에 F-16 전투기를 판매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F-16 전투기 도입은 튀르키예의 숙원이었다.
미국의 F-35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튀르키예는 F-35 전투기를 구매할 예정이었으나 2019년 미국의 반대에도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면서 판매 금지 대상에 올랐다.
이후 튀르키예는 F-35 대신 지난해 10월 미국에 40대의 F-16 전투기 및 기존 전투기 현대화를 위한 키트 80개에 대한 구매를 요청했으나 미국은 이에 대해 답변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은 나토 전력의 현대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에 동의한 반대급부였다는 해석에 이의는 없어 보인다.
지정학적으로 서방과 반서방 진영의 중간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터키의 모호한 외교는 널리 알려진 전략이다.
중동에선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미국이 주도한 국제동맹국의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미국이 지원했던 시리아 내 쿠르드족 무장조직을 섬멸하면서 시리아 내전을 피아 구분이 어려운 혼돈 속으로 몰고 갔다.
과거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분쟁 당시 미국이 러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흑해에 전함을 투입하려 했을 때 터키는 러시아 편을 들며 진입을 막은 전력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터키는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비난했지만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
동시에 양측의 평화회담, 곡물수출을 중재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2014년 본격화한 시리아 난민 위기가 발생했을 땐 이들의 유럽행을 막지 않겠다고 유럽연합(EU)을 압박해 경제 지원을 받아냈다.
미 CNN 방송은 30일 '튀르키예는 어떻게 나토의 와일드 카드가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토로선 골칫거리지만, 최근의 지정학적 현안은 튀르키예가 나토 동맹국이 안고 가야 할 대상임을 보여준다"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 지위를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병력 규모로만 보면 나토 회원국 중 미국 다음인 튀르키예는 1952년 나토에 가입했다.
나토 동맹을 자국 안보정책의 주춧돌로 여기지만, 2014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한 뒤에는 상당수 현안에 대해 나토 회원국과 입장차를 보였다.
그런데도 국가의 규모가 큰데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지리적 특성, 시리아 등 서방의 관심 대상인 중동 국가와 국경을 맞댔고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여서 지금과 같은 동서 대결 구도에서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전직 튀르키예 외교관인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싱크탱크 경제외교정책센터(EDAM)의 시난 울겐 소장은 "궁극적으로는 나토도, 튀르키예도 서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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